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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Mar 30. 2020

정말 고양이가 있었을까?

섬뜩했던 그 날 새벽, 정말 내 차 안에는 고양이가 있었을까.


1년 전 집사람의 이직은 아이의 보육문제와 직결됐고, 나는 직장에서 8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항상 직장 근처에만 살아왔던 내게는 난대 없이 하루 왕복 160킬로 미터라는 출퇴근 미션이 주어졌다. 더군다나 회사까지 가는 길은 경기도 곳곳의 주요 정체구간을 거쳐야 했기에 이른 새벽의 출근이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대략 4시 40분. 그 시간대에는 출근길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만큼 도로가 한산하기에 꽤 먼 거리지만 1시간 이내로 회사까지 도착할 수가 있다. 단, 단속 카메라가 없는 고속도로 구간에서 좀 과속을 해야만 가능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피곤한 새벽, 조금이라도 운전 시간을 줄이고자 과속을 곁들인 출근은 점점 습관화되고 있어다.

그 날 새벽도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나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야아 옹~"하는 작지만 또렷한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달리는 차 안에서 고양이 소리가 난다? 본능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짧은 찰나에 수많은 생각들이 팝콘 튀듯 터져 나왔다.


겨울철 추위를 피해 차의 엔진룸 등에 고양이가 들어갈 수도 있다던 동물보호단체의 주의문구, 규정속도인 110킬로미터를 훌쩍 넘어 달리는 중에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 대형사고를 낼 수도 있다는 공포, 지금 가까운 휴게소나 졸음쉼터가 없어 당장 차를 세울 수도 없는데 어떡할 거냐고 나 자신을 다그쳤다.


결국 갓길에 멈추고 차문을 모두 열었다. 혹시 몰라 트렁크까지 열어두었다. 고양이가 상황을 인지하고 나갈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5분이 넘도록 고양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캄캄한 새벽이었고 사방으로 문을 열어두어서 빠져나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고양이가 분명히 나갔을 것이라 확신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핸들을 잡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시작하자 조금 전 상황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정말 고양이가 있었을까? 혹시 순간 내가 졸음운전을 하며 환청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 머릿속에서 두 정당의 첨예한 공방이 시작됐다.


[고양이는 있었다 당]

'야아 옹~' 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추위를 피해 주차장에 들어온 고양이가 차 속으로 들어왔거나, 어제저녁 뒷좌석의 짐을 내리며 문을 열어두었을 때 들어갔을 것이다.

어린애도 아닌데 환청을 듣고 그렇게 놀라 위험한 고속도로에 차를 세웠겠느냐.


[고양이는 없었다 당]

새벽 5시도 안된 시간, 분명 비몽사몽 졸음운전을 하다 환청을 들었다.

고양이가 잠긴 차 속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고, 전날 문을 열어두었다 해도 사람이 곁에 있는 차에 고양이가 들어갈 리 없다.

평소 겁이 많고, 비몽사몽 한 상태였으니 엉뚱한 판단을 할 만도 하다.


내 머릿속 두 정당의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차 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의혹이 하나 나오면 즉시 없었다는 반론이 전개됐다. 한동안 시간만 나면 '정말 고양이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이제는 당시의 기억도 조금씩 흐려져 더 이상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고양이 말고도 내 머릿속을 채울 사건들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얼마 전 회사에서도 꽤나 큰 사건이 있어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잊혔던 고양이 사건은 우연히 뉴스를 보던 중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최근에는 뉴스 이름까지 '코로나 19'를 붙여 나올 정도로 코로나 관련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고양이 사건이 있던 즈음에는 온통 어느 고위공무원 가족의 비리 의혹과 그것을 반박하는 내용이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별히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당시 뉴스들을 관심 있게 봤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여러 방송사들뉴스는 마치 '정치'라는 격투기의 중계방송 같았고, 각자 매체의 성향에 따라 편향된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매체들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오히려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코로나 19라는 대형 이슈에 가려 점점 잊혔다. 다시 생각해봐도 '비리'냐 '아니냐'를 가려내는 문제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싶기도 하지만, 어디 그 사건뿐일까. 나 역시 고양이가 차 안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가려내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부터 정신 차리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니 이거 정말 궁금해진다. 내 고양이 사건 말이다. 

그날 새벽, 정말 내 차 안에는 고양이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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