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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ul 01. 2022

끝이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흔적처럼 2022 S/S 행위예술 영상展 <끝과 시작>


'우주 속 반짝임이 사라진다. 겨울에 내리는 눈발처럼, 우리는 무언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거나 허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둠이 찾아와야 반짝임들은 다시금 생겨나는 것처럼, 끝이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 속 많은 것들 또한 사라지고 생겨나며, 끝과 시작은 이렇게 계속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어주는 이러한 반짝임들을 길잡이 삼아 우리는 계속하여 나아가면 될 뿐이다.'



_‘명암(明暗)’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하나의 형 속 어둠과 밝음은 어우려져 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의 반복된 움직임을 통하며 명암 속 수많은 양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빛과 어둠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져 형태를 만들고,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이 형태는 동일성이 없이 반복되면서도 언젠가는 겹쳐져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행위예술 <끝과 시작>은 각기 다른 것들이 동일성 없이 겹쳐지고,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 철학 개념 '시뮬라크르'에서 시작됐다.


네 명의 영혼이 움직인다. 각기 다른 개인이 자신들의 위치에 존재한다. 나무 아래 기대어 무언가를 그리는 영혼과, 명상하는 영혼, 뒷걸음질치고 구르기도 하는 영혼, 그리고 끊임없이 음악을 연주하는 영혼이 있다. 이들은 각각 관찰, 고뇌, 아득함, 그리고 열정을 의미한다.



나무 밑에 기대어 관찰하며 무언가를 그려내는 영혼이 있다. 고유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리는 도구를 보면 나뭇가지에서 연필로 나아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명상하는 영혼은 나아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고뇌함을 의미한다. 앞만 보며 쉴새없이 달려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고요하게 멈추어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이다.


뒷걸음질치고 구르며 괴로워하는 영혼은 좌절과 힘듦, 슬픔을 겪는 양상을 나타낸다. 나아가다보면 시련과 고난이 존재한다. 이 때, 넘어져 구르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나아가다보면 우리는 이러한 순간을 마주하게 됨을 나타낸다.


핸드팬을 연주하는 영혼은 악보는 없지만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선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 또한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유로이 나아가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의미로 자신들의 위치에서 존재하지만 때로는 일어나 걷다가 겹쳐져 하나가 된다. 이 모습은 시뮬라크르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결국, <끝과 시작>은 '나아감'을 이야기한다.

영상 속 자주 줌인 되는 손과 발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걷거나 뛰며 나아가자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잠시 멈추어 고민할 때도, 괴로워할 때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영혼이 담긴 무언가(영상에서는 그림이나 음악 등으로 상징된다)를 삶 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끝이 나고 넘어져 구르더라도 다시금 일어나 걷는다. 각기 존재하다가도 때로는 만나 함께 걸으며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음 하나하나를 밟아가며 삶이라는 악보 없는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제주, 사려니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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