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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글쓰기 Feb 03. 2024

도시철도근무

공공 일자리 대부분 1년 이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서울시 일자리 센터를 통해 도시철도공사에 지원했다. 도시철도 근무는  월급은 적으나 교통이 편리하고 근무 여건이 비교적 좋았다. 취업 정보를  알기 위해 ‘공공 일자리 센터’ 홈페이지에 부지런히 들어갔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도시철도공사 질서관리요원으로 월 1백만 원 정도 받으며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친구들에게 직업을 갖었다고  떳떳하게 말을 못 했다. 다른 일자리는 나를 거부했다. 나이 때문이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합격하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굴신 거리며 젊은 사람들에게 면접을 했다. 옛날 직장 다닐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렇게 해도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함께 면접 보던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다. 경쟁률이 4대 1이 넘었다. 2011년 6월 22일 방화역으로 배치됐다. 일거리 창출 목적으로 공사가 100명 이상을 채용했다. 인터넷을 검색을 해서 시니어게 주는 공공 일자리 창출 기회를 잘 이용했다.


내가 하는 일은 질서 관리 업무 다. 전철이 출발하는데 억지로 타는 사람, 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에 술에 취해 졸면서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일등이다. 그동안 공익근무자가 혼자 하던 일이다. 방화역은 5호선 종점이므로 유실물이 많고 졸거나 술에 취해 기지로 그냥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런 일도 그다음 연도는 예산이 없어 일거리가 없어져 아쉬웠다. 쓸데없는 복지 예산 보다 일거리 찾기 창출을 위한 예산에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하에 장시간 근무하다 보니  미세 먼지가 많아 머리가 띵해진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방화역은 양쪽으로 환기가 잘 안돼 공기가 더 나빠 많은 사람들이 비염으로 고생한다고 했다. 나는 휴식시간에 지상에 올라와 물고기처럼 숨쉬기운동을 하고 내려가고 집에 오면 물에 소금을 타서 콧구멍 청소를 했다. 

지하 근무자는 응달에서 개미들같이 묵묵히 자기 맡은 일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도시철도직원이  회식을 한 적도 있고, 그냥 말없이 헤어진 적도 있었다. 임시직으로 몇 달을 다녔다 하더라도 헤어질 땐 섭섭했다. 밥을 사 준 직원은 지금도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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