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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비하인드 더 문

달의 뒤편에서 버티게 해주는 힘

by 아스토리아

2021년에 쓴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이 드디어 올라갔다. 2023년 리딩 때는 뉴욕에서 ‘라흐헤스트’와 ‘크레이지 브레드‘ 워크숍 하느라 못 갔고, 2024년 쇼케이스 때는 병원에 있어서 못 갔는데... 본공연을 보러 갈 수 있게 돼서 한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비하인드 더 문’은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을 하고 닐과 버즈가 달에 발을 내딛을 때, 달의 뒤편으로 날아갔던 세 번째 우주인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이다.

그에 대해 알게 된 건 ‘달 탐사 50주년’ 기사를 통해서였다. 달에 갔던 세 사람 중에 유일하게 그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마이클의 기사를 읽고서야 그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에 대해선 알고 있었는데 아폴로 11호에 우주인이 한 명 더 있었는 줄도 몰랐고, 게다가 그는 달까지 갔는데도 달 착륙을 못하고 사령선 조종을 하며 달의 뒤편으로 가야만 했어야 하는 줄도 몰랐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 ‘너를 위한 글자’는 눈이 멀어가는 친구를 위해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타자기를 만든 펠레그리노 투리의 이야기를 썼고, ‘라흐헤스트’는 이상과 김환기의 뮤즈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김향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썼다. 그랬기에 마이클 콜린스의 삶은 나에게 너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가 쓴 책들을 찾아서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 그는 정말 단단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아도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우주인, 별도 보이지 않아 캄캄한 달의 뒤편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던 사람, 그리고 아폴로 17호의 선장 역을 제안받았지만 우주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 지구였다며 은퇴를 하고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기로 한 멋있는 남자였다.

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쓰면서 세상 모두가 닐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지켜볼 때, 달까지 갔는데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휴스턴과 교신도 끊기고 별도 보이지 않아 ‘어둡다’는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암흑 속에 홀로 있었던 그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투병을 하면서 문득 마이클이 생각나며, 그의 고독함과 외로움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항암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외로운 싸움이다. 옆에 엄마가 계속 계셔주셨지만 끔찍한 고통을 버텨내야만 하는 건 오롯이 나 자신이었다.

병원 침대가 마치 작은 배처럼 느껴졌고, 이 배 하나에만 기대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밤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무섭다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어서 고독하고 외로웠다.

그런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지구에서 달을 향해 손 흔들고 있을 나의 사람들’ 덕이었다. 달의 뒤편에선 보이지 않는 지구에서 내가 이 싸움에 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이들, 괜찮냐고 묻기조차도 조심스러워 연락도 하지 못하고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을 갈 때마다 나에게 미안해하던 사람들... 나는 그들이 있었기에 어둡고 고독한 달의 뒤편을 지나 지구로 올 수 있었다.

무중력인 우주 공간에서 자신을 중력처럼 지탱해 주던 힘은 사랑이었음을 마이클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달까지 갔음에도 달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도, 모두의 기억 속에 잊히는 3번째 우주인이 되어도 괜찮았던 것이다. 이런 얘기를 ‘비하인드 더 문’ 상견례 때 조금 나누었고, 배우분들을 비롯한 모든 팀이 다 이해를 해주셨다. 그래서 고독보다 사랑에, 외로움보다 자부심에, 작은 흔적보다 작은 임무에 집중한 이 극을 정성스레 함께 만들어나갔다.

이 극이 어두운 달 뒤편에 홀로 있다고 느껴지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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