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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Feb 15. 2019

단 하루만 로마에 머물 수 있다면

몇 군데 추천하고 싶은 곳들이 있습니다

5. 어쩌면 지금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지도 모를 당신에게


 빗방울을 맞으며 로마 테르미니 역(Stazione Termini) 플랫폼을 걸어 나올 때부터 불과 몇 분 전까지 빗속의 도시는 줄곧 실망감만을 안겼다. “에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구름 걷힌 하늘 아래 로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암막이 걷힘과 동시에 화려한 춤과 노래가 시작되는 뮤지컬처럼 나는 실망감을 훌훌 벗어 발끝으로 차 내고 골목과 광장 위를 뛰어다녔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에서 시작해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을 지나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으로, 그렇게 가속도가 붙은 걸음과 환호성이 판테온(Pantheon) 그리고 포로 로마노(Foro Romano)까지 이어졌다. 되도록 한 곳을 진득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속도였지만, 걷다 보면 오 분 또는 십 분에 하나씩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유적지들이 ‘발견되는’ 바람에 도무지 중간에 멈출 방도가 없었다. 후에 한 말이지만 로마는 내게 세계 최고의 테마 파크였다. 그 수를 다 셀 수 없는 로마 제국의 건축물과 유적들이 도시 전역에 고루 퍼져 있고, 그들을 잇는 거리와 바닥의 문양, 그리고 깨진 벽 조각까지 예사롭지 않았다. 음식 역시 환상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내가 사랑하는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식사 후에는 집집마다 다른 매력의 젤라토를 찾아다녔다. 거기에 평소 동경하던 이태리 남성 슈트까지 쇼윈도마다 즐비했다. 나는 되도록 유명 관광지는 피하자는 주의지만 로마 그리고 이탈리아만큼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종일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소매치기만 잘 피한다면.


- ‘어쩌면_할 지도’ 본문 





 반갑습니다. 로마에 잘 오셨습니다. 보아하니 긴 여행을 하고 계신가 보군요. 한눈에도 여행자 태가 나니 말입니다. 아뇨, 옷차림 때문만은 아닙니다. 플랫폼을 따라 걸어오는 동안 발걸음과 눈빛 그리고 입꼬리에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거든요. 이곳 테르미니 역에 있다 보면 심심찮게 보는 모습입니다.


 로마는 처음이시라고요. 정말로 멋진 도시죠. 그런데 하루밖에 안 계신다니 아쉽습니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로마를 느끼기에 하루는 턱없이 모자라거든요.


 꼭 가 봐야 할 곳이라.. 글쎄요, 여행에 꼭이랄 게 있을까요.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며 나만의 로마 지도를 만들어 보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많은 도시들을 바쁘게 여행하셨을 테니까요. 그래도 몇 군데 추천하고 싶은 곳들은 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지하철을 타고 스파냐(Spagna) 역으로 가세요. 영화 <로마의 휴일>(1953)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젤라토를 먹었던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수도에 스페인 광장이 있다니 재미있다고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Trinità dei Monti)과 계단으로 연결된 작은 광장에 주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사람들이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이라 부르던 것이 아예 정식 명칭이 됐다더군요. 로마 중심지에 있는 데다 주변으로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해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혹시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셨나요? 아니라고요.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겠네요. 너도 나도 오드리 헵번을 따라 하는 통에 관리 문제가 생겨 지금은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는 것이 금지돼 있거든요.



 대신 광장과 이어진 골목 초입에 근사한 카페 그레코(Caffè Greco)가 있으니 커피로 아쉬움을 달래 보시는 건 어떨까요. 1760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250년이 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중 한 곳입니다. 괴테와 바그너 등 당대 예술가들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죠.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세요. 이곳 사람들처럼 설탕을 두 봉 넣고 휘휘 저어 한 입에 들이켜는 것을 추천합니다. 바닥에 가라앉은 설탕을 잘근잘근 씹으면 쌉쌀함과 달콤함의 조화가 일품이죠.


주소 : Via dei Condotti, 86, 00187 Roma

웹사이트 : http://caffegreco.shop

전화번호 : +39 06 679 1700



 티 타임이 끝난 후엔 로마에서 가장 큰 분수 트레비(Fontana di Trevi)에 가 보세요. 1762년 완공된 트레비 분수는 그 규모도 규모지만 바로크 양식의 정수로 불릴 만큼 건축과 조각이 아름다우니 찾아가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겝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이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에 가기 전에 동전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시죠? 아, 들어본 적 있으시다고요. 네 맞습니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언젠가 다시 로마에 오게 되고 둘을 던지면 일생의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하죠. 그럼 세 개를 던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계신가요? 그 인연과 이별하게 된다고 합니다. 허허, 제가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어떤 심술쟁이의 소행이겠죠.


 물방울 수 못지않은 트레비의 인파 속에서 동전 던지기에 성공하셨다면 다음은 판테온에 갈 차례입니다. 역시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인데 둘 사이의 골목길이 무척 근사하니 호젓하게 여유를 부리며 두리번거리셔도 좋겠습니다. 혹 그때까지 스페인 광장에서 드시지 못한 젤라토 생각이 가시지 않으신다면 근처에 있는 지올리띠(Giolitti)를 추천합니다. 로마에서 손꼽히는 젤라토 가게죠. 저는 고소한 맛에 쌀알 씹는 재미가 있는 리소(Riso) 젤라토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소 : Via degli Uffici del Vicario, 40, 00186 Roma

웹사이트 : http://giolitti.it

전화번호 : +39 06 699 1243



 모든 신에게 바치는 만신전(萬神殿) 판테온은 최초로 축조된 시기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돔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2000년의 세월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로마 그리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보니 내부 관람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는 수십 미터까지 이어지는데 마음이 분주하시더라도 기다려보시는 걸 권합니다. 직경 43.3m의 돔 최상부에 뚫린 9m가량의 구멍은 태양을 상징하는데, 그 사이로 쏟아지는 빛을 보는 순간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판테온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나보나 광장은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세 개의 아름다운 분수로 유명합니다. 그중 가운에 있는 콰트로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에는 네 사람의 형상이 서 있는데 각각 나일, 갠지스, 다뉴브, 라플라타 강을 상징한다죠. 그 뒤로 펼쳐진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Sant’Agnese in Agone)도 몹시 아름답습니다. 멋진 기념사진이 필요하다면 아마도 이곳이 좋을 겁니다.



 네, 압니다. 로마에 왔으니 콜로세움(Colosseo)을 그냥 지나칠 수 없죠. 나보나 광장 앞에서 87번 버스를 타면 콜로세움으로 갈 수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버스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도 한 번쯤 권하고 싶군요. 최대 8만까지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 극장 콜로세움 역시 2000여 년 전 지어진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입니다. 검투사들의 대결과 서커스 공연 등이 열리는 로마 시민들의 유흥 시설이 현재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죠. 사람 많은 로마에서도 콜로세움은 관광객으로 가장 붐비는 곳이니 들어가 보시려면 시간 안배가 중요하겠네요. 어쩌면 판테온과 콜로세움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할지도요.



 충분하진 않으실 테지만 콜로세움을 둘러보셨다면 아마 오후가 훌쩍 지나 있을 테죠. 남은 시간은 콜로세움 옆에 있는 포로 로마노에서 보내시는 건 어떨까요. 고대 로마 시대의 시작과 함께 이곳에 개설된 포룸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다죠. 그 흔적들이 마치 기적처럼 잘 보존돼 있는 곳입니다. 혹 시간이 촉박하시다면 콜로세움과 베네치아 광장을 잇는 큰길을 걸어도 좌측으로 포로 로마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누스 게네트릭스 신전(Tempio di Venere Genitrice)을 따라 왼쪽 오르막길을 오르면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이자 가장 높은 언덕인 캄피돌리오(Campidoglio)에 닿을 수 있습니다. 언덕 위에 펼쳐진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보는 석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죠.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미리 가 석양을 기다려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마무리가 되겠네요.



 해가 지고 로마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남은 것은 하나, 여행지에서의 근사한 저녁 만찬입니다. 고된 하루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뭐든 꿀맛일 겁니다. 캄피돌리오 언덕 아래에도 식당이 많지만 밤이면 주황색 불빛으로 더 근사해지는 스페인 광장 근처 골목 곳곳에도 괜찮은 식당이 많으니 다시 가보셔도 좋습니다. 이탈리아에 오셨으니 역시 피자나 파스타가 좋은데 다만 음식들이 조금 짜게 느껴질 수 있으니 소금을 빼 달라는 말을 기억해 두고 가세요. 뽀꼬 살레(Poco sale)라고 하시면 됩니다.



 처음 로마에 온 날 생각에 신이 나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하루뿐인 소중한 시간인데요. 말씀드린 곳들을 모두 기억하시는 건 역시나 무리겠죠. 괜찮습니다. 길을 잃어 헤매는 골목길 역시 로마의 일부분이니까요. 시간이 부족하면 몇몇은 건너뛰어도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스페인 광장이 몹시 마음에 드신다면 종일 계시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래야 훗날 다시 로마에 올 날을 기약하게 되실 테니까요.


 이런,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네요.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위해 떠나실 시간입니다.

잊지 못할 로마에서의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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