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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Jun 23. 2021

사활을 걸었습니다 #03

잊지못할 추억이되었습니다.

오디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한 회차의 분량은 평균 15분 정도가 된다. 15분짜리 한편을 제작하는데 보통 하루정도 소요된다. 여러 효과음과 포인트 되는 장면에 필요한 음악을 찾다 보면 야근은 필수가 되는 듯하다. 한주에 마감해야 할 분량은 최소 8회 차 분량이다. 혼자 담당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제작 일정이다. 다행히 후배와 4 회차씩 나누었기에 마감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편집을 하다 보면 사극과 관련된 효과음을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기존 선배들의 효과음 자료부터 외국계 효과음 플랫폼 서치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가지고 있는 소스를 믹싱 하는 작업만 3주 정도 진행됐다. 옷 소리는 한복의 거친 질감이 잘 표현된 소리가 담겨 있어야 했고 발소리, 의자, 접시 등 나무의 딱딱하고도 오래된 느낌의 효과음을 잘 연출해야 했다. 그중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과 여닫이 문의 효과음을 찾는데 가장 애를 먹었다.


효과음 믹싱 작업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수소문하여 사극 효과음 제작을 하는 업체와 여러 음향 감독님들을 찾아 문의를 했다. 사극 효과음은 제작할 시 비용도 만만치 안을뿐더러 당장 불가능 하고 몇 년 후에야 제작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구매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믹싱 작업에 매달렸다. 그래도 덕분에 효과음 믹싱 작업에 자신감이 붙어 나중에는 효과음 제작 사업을 하겠다고 주변에 떵떵 거리며 다니기도 했다. 


녹음은 매주 화요일 11시에 진행됐다. 총 9명의 성우님들과 각색 작가님이 매번 녹음에 참여했다. 녹음시간은 점심시간과 겹쳐있었다. 모두가 배고픈 시간이다. 오후 12시만 넘어가면 종종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자주 녹음됐다. 결국 그리하여 매주 녹음 때마다 한 가지 패턴이 생겼는데 쉬는 시간마다 돌아가며 간단한 점심을 사는 것이다. 김밥, 햄버거, 빵과 같이 간단하게 요기할 있는 간식을 돌아가며 서로 대접했다. 보통 3회 차 정도 분량을 녹음하면 1시간이 걸렸고, 3회 차 분량이 끝나면 첫 쉬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이 시간에 맞추어 간식을 먹는 것이 자리 잡았다.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농담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녹음만 아니면 하루 종일 성우님들과 농담 따먹기 하며 같이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서서 먹는 김밥의 맛은 정말 꿀맛 이었다. 보통 김밥 한 줄을 먹지만 그때만큼은 2~3줄 까지 먹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품 제작을 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고 마지막 녹음 일이 되었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9명의 성우님들과 함께 매주 4시간씩 함께 작업했다. 유독 이번 프로젝트에서 같이 작업하던 성우님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주며 언제든 즐겁게 작품에 임해 주셨던 성우님들 덕분에 정말 녹음시간이 즐거웠다. 


같이 작업하던 후배는 기념 굿즈 물통까지 제작했다. 제작에 참여한 성우님들과 작가님, 나를 포함한 굿즈였다. 물통 앞면에는 직접 그린 성우님들, 작가님, 내가 그려져 있었다. 뜻밖의 선물에 성우님들 모두 감동하였고, 물통에 서로의 싸인을 넣어 간직하기로 했다. 그렇게 2명의 피디와 작가님, 8명의 성우님들의 싸인이 각자의 물통에 새겨졌다. 마지막 녹음날 받은 물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첫 녹음 때는 '분명 고생만 하다 끝나겠지'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내 인생 최고의 걸작으로 기억됐다. 그나마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니 우리의 열심과 진심이 모두에게 감동이 되었던 듯하다.


녹음이 끝난 뒤 오랜만에 성우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구르미 그린 달빛> 작품의 연재 종료 인사 녹음을 요청드렸다. 7개월이라는 긴 작품 연재가 마무리되는 감사 인사 녹음이었다. 어느 한 성우님의 "진짜 고생해주신 우리 제작진 분들..." 이 한마디에 정말 감동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인사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사말들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이 많다고 눈칫밥만 먹으며 고생한 것에 대한 말한 마디 조차 못 받았는데, 같이 작업하신 성우님들의 아낌없는 감사인사에 감동했다.


네이버 매니저님의 "사활을 걸었다"라는 요청에 요령껏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밤새워 가며 열심을 다한 끝에 좋은 추억을 얻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으쌰 으쌰 하며 나아갔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응원해주신 성우님들 덕분에 기분 좋게 작품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되돌아보니 그때 그 힘든 시간이 내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잊지 못한 추억이 되었다. 사활을 건 에너지가 지금은 방전되어 충전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감사함과 행복함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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