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 Jan 13. 2021

프롤로그 : 작은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작은 영화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직함은 프로그램 매니저.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인 건데, 작은 곳이다 보니 그 외에도 하는 일은 많다. 약 180석 규모의 그리 작지 않은 영화관이지만 스스로 이곳을 '작은' 영화관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관이 하나이고, 주로 마이너 영화를 상영하며, 문을 여는 날이 적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에만 해당해도 작은 영화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영화관은 그렇게 불릴 자격을 세 가지나 갖춘 셈이다.


영화관이 문을 여는 날이 적은 건 낯설게 들릴 텐데, 실제로 흔한 사례는 아니다. 우리는 상설 상영관의 자격을 갖추지 않은 비상설 상영관으로, 1년에 상영할 수 있는 일수가 120일로 정해져 있다. 도서관이나 문예회관 등의 상영 시설이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인데, 우린 이처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경우도 아니다. 사기업에서 명백히 사업을 목적으로 지은 극장이고 심지어 괜찮은 정도를 넘어 훌륭한 상영 환경을 갖추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비상설로 운영하고 있다. 드문 사례 중의 드문 사례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생략하기로.


비상설 상영관은 상영 일수뿐 아니라 제약이 많다. 공식적으로 영화 상영관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관객 수가 오르지도 않으며, 사정이 어려운 영화관을 돕는 지원 사업에 신청도 못하며, 이런 탓에 가끔 배급사로부터 무시를 받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영화관이 표준적이지 않다 보니 나의 업무도 '영화관 매니저가 하는 일'의 정석을 벗어날 것 같다. 그래서 망설이는 마음이 조금 들기도 했는데, 연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작은 영화관 매니저의 일기. 여기서 일하면서 생기는 소소하나 분명 특별한 경험과 감정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망설이던 마음을 고쳐먹은 건, 실무서를 쓰려는 건 아니니까 아무렴 상관없을 것 같아서다.


시작하기 전에 이 연재의 성격에 대해 몇 가지 선언(을 핑계로 스스로 명심)을 하고 싶다. 첫째, 이 글은 에세이다. 리포트나 논문이 아니다. 간혹 통계나 전문적인 내용을 어디서 가져와서 인용하기도 할 것 같지만, 전체적인 목적은 지식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하고자 한다. 둘째, 하지만 이 글은 혼잣말하듯 적는 일기는 아니다. 제목의 일기는 記가 아니라 work journal의 뜻으로 썼다.






1년 전쯤, 2019년 말이었나 2020년 초였나. 처음으로 이 연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나는 글쓰기를 미뤘다. 극장 상황이 예외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린 아직 이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극장의 모습은 더 이상 특수한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영화관의 미래를 비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이 2020년, 2021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까지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은 있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해보려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느낀 점도 자연스럽게 함께 적게 될 것 같다. 줄어드는 매출에 힘 빠지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한 명의 관객. 그 관객이 느끼게 해준 생각과 희망 같은 것들. 관객이 영화를 볼 동안 나는 눈을 반짝이며 관객을 봐야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