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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Feb 07. 2022

인사와 꼰대의 상관관계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37


어떤 단어를 이용해서 묘사하는 게 좋을지 꽤 고민했지만 다른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데 실패했다. 어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의미 전달을 확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이걸로 선택하겠다. 나는 꼰대다. 


학원은 제한된 장소에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공간이 아니다. 어학실 에는 보조 선생님, 로비에는 데스크 선생님, 교무실과 교실에는 출퇴근 시간이 다른 선생님들이 흩어져 있다. 심지어 시간대 별로 다른 학생들이 학원을 오고 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인사를 하루에 굉장히 여러 번 해야 한다는 뜻이다. 들어가면서 좌우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중간중간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한테 안녕~까지 최소 다섯 번 정도는 인사를 해야 내 자리에 들어가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좋다. 나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수업을 시작할 때도, 끝날 때도 우리는 인사가 필요하다. 


-


"오늘 여기까지 하자, 숙제 체크 잘했지? 다음 시간에 보자 안ㄴ......"

얼마 전 진행한 온라인 수업 막바지, 나는 하던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한 학생이 그냥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어지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 나는 그날의 황당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학생들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사춘기를 겪기 때문에 말이 과도하게 많아 지거나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모든 걸 눈으로 해결하려는 타입의 중학생들은 더 당황스럽다


" 안녕 얘들아~ "

".... "

"안녕~ 선생님 목소리 못 들었어?"

"...." 

" 선생님한테 인사 안 해 줄 거야? 선생님은 인사했는데 여러분이 대답을 안 해주니까 서운하네 "

"... "


이번 학기 유독 내성적인 친구들만 모아둔 반에서 첫날 생긴 일인데 아직도 학생들의 바삐 움직이는 동공들이 기억에 선명하다. 빠르게 스캔해보니 반에 분위기 메이커가 없다. 나서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용감할 친구도 없다. 학원에 등원해서 문제 풀이가 아니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학생들도 많다. 아이들의 성향을 알다 보니 어쩌다가 이렇게 반 편성이 되었나 원망스러울 뿐이다. 아이들의 천성을 무시하며 소리 내서 인사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인사는 관계의 시작'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꼭 알려 주고 싶다


" 아직 첫날이라 부끄러워서 그러는구나? 오늘은 속으로 인사하고 선생님이 텔레파시로 들을 테니까 다음 시간부터는 다 같이 소리 내서 인사하자"


-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내일 봐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면 좋겠다. 


인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본론만 간단히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부대 끼면서 살아가고 여러 종류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예의가 넘치는 경우는 잘 없고 매너가 독이 되는 경우는 더 없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학생들에게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마법의 문장들이다. 물론 성인이 되었다고 모두가 인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영어보다 앞서 기본적인 도리를 가르치는 게 제일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으니 나도 인사를 더 잘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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