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시장의 구조 이해하기
그렇다. 알약들을 담고 있는 선반으로 구성된, Damien Hirst의 Bodies라는 작품의 가격이 약 30억이라고 한다.
얼마 전 아트 바젤과 더불어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Frieze)의 서울 2023 전시가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와 함께 열렸다. 서울에서 처음 열렸던 2022년에 비해 화제성은 다소 떨어진 느낌이었으나 (“얼마가 팔렸다"는 기사가 많이 안 보였다), 저변은 더 확대된 것 같다. 30억짜리 알약 선반도 전시되어서 가까이 볼 수 있었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미술 시장의 주요 Stakeholder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가 궁금해서 조사/정리해 보았다. “연애를 책으로 배운" 수준이며 실제 종사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가소로운 내용임을 미리 밝힌다. 그리고 미국/유럽 중심의 내용이라 한국의 실정과는 다소 안 맞을 수도 있다.
미술 시장의 구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일부 유사하다. 즉, 연예인은 아티스트, 엔터테인먼트사는 갤러리와 유사하게 움직인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방송국, 인터넷, Streaming 플랫폼, 영화관 등이 유통채널 역할을 하고, 아트는 Fair나 경매사이트가 존재하지만 갤러리가 직접 컬렉터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유통 채널은 다소 차이가 난다. 또한, 아트 시장은 아직도 Local 하다. Frieze 등 아트 페어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컬렉터가 투자하는 규모는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극 소수이다.
참고로, 크리스티, 소더비 등은 경매업체(Auction House)들은 이미 판매된 작품들을 재 판매하는 2차 시장 (Secondary Market)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위 그림에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아울러, 판매보다는 전시에 충실한 구겐하임, 리움 등도 제외하였다.
갤러리는 쉽게 말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컬렉터들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갤러리의 선구자는 Leo Castelli라는 미국인이며, 그는 갤러리가 유망 작가를 발굴하고, 전속계약을 통해 거의 평생을 같이 성장해 가는 모델을 정립하였다.
그가 발굴/육성한 아티스트에는 Roy Lichtenstein, Andy Warhol 등이 포함되어 있으니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을 통해 아트의 홍보/마케팅이 작품 중심에서 아티스트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미국의 아티스트들을 유럽에 소개하는 기여를 하게 된다. 아티스트와 갤러리 간 상호 충성도가 높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0년 이상 된 중견 갤러리 들은 보통 8명 ~ 24명의 전속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에게 유명 갤러리와 계약하는 것은 꿈같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물론 예외는 늘 있다. 2008년 Damien Hirst가 중간 딜러를 건너뛰고 소더비에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판매하면서 $200M (약 2500억 원) 수익을 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허스트는 작품뿐 아니라 행동도 독특한 것 같다. 참고로, Damien Hirst는 19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유명해진 YBA (Young British Artist)라는 아티스트 그룹의 일원으로 포르말린 통에 담긴 상어, 양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근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대형 갤러리의 등장이다. 즉, 뉴욕이나 런던에서 시작한 갤러리가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다수의 “지점"을 내면서 외형을 확대한 Pace, Gagosian, Hauser & Wirth, Marian Goodman, Whitecube, David Zwirner가 여기에 속한다. Gagosian의 예를 들면, 전 세계 직원이 150명+, 연간 매출이 조 단위를 넘는다고 한다. 소속 작가도 Cy Twombly, Tom Sachs, Richard Serra, John Currin, Richard Phillips, Mark Kostabi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한국에는 Pace가 들어와 있고 WhiteCube도 곧 오픈 예정이다. 이렇게 대형화/글로벌화로 인해 그들만의 "Inner Circle"이 더욱 위상이 높아지고, 컬렉터들도 이 안에 끼기 위해 갤러리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힘의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컬렉터 중에서도 상위 1%에 드는 VVIP 컬렉터들도, 바쁜 일정을 쪼개 해외로 갈 필요가 줄어들어서 대형 갤러리의 활동을 반기는 입장이다.
반면 부작용도 많다. 일단, 중소갤러리가 보유한 유망 아티스트를 대형 갤러리가 채가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작가들에게는 가격과 동시에 판매속도도 중요한데, 대형 갤러리가 새로운 도시에 오픈하면, 그 지역 아티스트 작품을 일시에 구입하면서 가격이 급상승, 판매 속도가 급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컬렉터들과 관계가 갤러리의 힘이었지만 그 관계의 끈이 갤러리에서 Fair로 이동 중이고, 페어가 예약한 공간보다 3배 이상 갤러리들이 신청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등, 아트 페어의 위상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작가의 다양성이다. 원하는 작가/작품은 특정 갤러리에서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아트페어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비교가 안되게 폭이 넓다. 백화점이나 e-commerce가 제공하는 다양성과 같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2019년 가장 큰 아트페어인 Art Basel Miami에서 그 유명한 덕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를 보고 마음에 들었으면 구입이 가능했겠지만, 설령 내가 Marian Goodman씨와 절친이어도 동일 작품을 Marian Goodman 갤러리에서는 살 수가 없다. 도산대로에도 갤러리를 보유한 페로탕(Perrotin)이 Art Basel에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트 페어의 신뢰도와 권위이다. Prestiege의 상징이 갤러리 보다도 Fair로 이동하고 있고, 이에 따라 컬렉터들도 어떤 갤러리보다는 어떤 Fair에서 구입했는지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
세 번째는, 갤러리들의 이해관계이다. 갤러리 입장에서도 판매의 1/3 이상이 아트 페어에서 나오고 있고, 아티스트 홍보에 필요한 비용을 페어를 통해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돈이 페어로 몰리면서, 아티스트들이 원한다. 작가의 작품이 3천만 원을 넘어가면, 갤러리는 그 작품들을 대형 Fair에 전시해야 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반면, 아트페어로의 쏠림현상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우선, 아트페어들은 공간을 "판매"가 목적인, 대형 갤러리 중심의 공간과 "새로움"을 제시하기 위한 중소 갤러리 중심의 공간을 구분하여 일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이로 인해 중소 갤러리 들은 아트페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참신한 작품들로 전시를 꾸리면서 판매 실적은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 몇 억 원씩 소요되는 페어 참가 비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을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알게 모르게 작가나 갤러리들이 지나치게 해당 페어의 특성이나 입맛에 맞추는 경향도 발생한다. 일종의 "표준화" 현상인데, 예를 들어 미디어아트 vs. 추상화의 비중이 획일화되거나, 페어의 공간에 맞춰서 전시물을 선정하는 등의 Originality가 떨어지는 현상도 종종 벌어진다.
과거 Super Rich들의 상징이었던 아트 컬렉팅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일명 "Doctors and Lawyers"라고 하는 컬렉터 층이 대거 확대되었다. 또한, 북미/유럽의 컬렉터 층 외에 특히 아시아에서 대거 컬렉터들이 등장하여 아시아 미술 시장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ARTnews에서 매년 발표하는 top 200 collector를 봐도 아시아의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와서 대략 500만 원 정도 되는 저가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으로, 나중에 “대박"을 기대하는, speculative buying이 빈번하다. 전체 아트 시장의 성장은 더딘데 비해 거래량은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평균 거래가가 계속 낮아지는, 일종의 대중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극소수만 억만장자가 되고 나머지는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시절에서, 점차 평균적인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는, 그래서 아트시장의 선순환이 일어날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로 보인다.
알다가도 모를 시장이 미술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다 보면 무한한 매력이 있는 분야 이기도 하다. 얼마 전 시끄러웠던 NFT (Non Fungible Token을 포함, 미술 시장에 대해 조금씩 더 다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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