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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보는 것보다 크고 넓다.

취미생활은 동호회에서!

남자친구와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갔다가 전남친을 마주쳤다. 웨이팅을 해서 들어간 터라 뒷걸음질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다찌에 둘러 앉아 먹는 아주 작은 가게였기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왜 수많은 가게중에 하필 여기서.

이곳은 지금의 남자친구와 처음 오게된 곳이고 난 예전 남자친구와 함께 자주 찾던 가게들은 더이상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도 든다.

우리는 둘다 오코노미야키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내가 싫어졌다고 오코노미야키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맛있는 오코노미야키집에 그가 오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같은 시간에 찾게 된것은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지만 말이다.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금사빠가 되는 편이라서인지 구남친을 좋아하는 동네나 식당, 바에서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헤어지면 이런 문제가 있다. 오코노미야키를 좋아하는 남자와는 음악적 취향이 아주 비슷했다. 그래서 콘서트장 같은 곳에 가면 그를 마주칠까봐 조금 긴장이 된다.

비슷한 헤어스타일, 안경, 뒷모습 같은 것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만약 다프트 펑크가 내한공연을 한다면 우린 그곳에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취향이 비슷해서 사랑에 빠지는 일의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의 연애는 영혼의 쌍둥이인줄 알았던 우리가 얼마나 다른 두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음악적 취향이나 오코노미야키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우린 다른 점이 훨씬 많았다. 서로의 취향을 겹쳐보면 취향의 교차점은 아주 일부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취향이 일부 확장되고 변화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그냥 좋은 척으로 끝이 났다. 종국에는 우리의 취향에 다른 부분이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데 일부 기여했던 것도 같다.  


지금 남자친구와는 사실 취향도 취미도 무척 다르다. 함께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같이 요리를 만들어먹고 영화를 보며 뒹굴거리는 정도이다.  하지만 연애가 동호회 활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나도 안다. 우리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는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그에게 내용을 정리해 얘기해준다. 그는 절대 그 책을 읽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에 추리소설 범인도 마음껏 스포한다. 신발을 좋아하는 그는 매일 핸드폰으로 주식시장 보듯 신발 시세를 살핀다. 신지도 않는 신발이 계속 쌓이는 것이 흥미롭다. 그 신발이 힙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가끔 함께 드로우 응모를 하기도 한다. 


그는 내가 보는 것보다 크고 넓다.

내가 모르는 그의 세계를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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