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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가 Sep 10. 2020

육아, 가장 어렵고 즐거운 일

아이가 하나일 때도 힘들었지만 둘이 되면서 나는 그 시작하는 1년 여가 엄청나게 힘들었다.


얼마큼 힘들었냐면, 회사 다닐 때 수습기간을 일컬어 '사회판 이등병 시절'이라 표현했던 동기도 있었는데 그보다도 더더더 힘들었다. 못 먹고 못 씻고 욕먹고 술 먹고 토하고 그런 건.. 그런 건 그래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토막 시간이 존재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 차원이 달랐다.


내 의지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똥을 싸다가도 애가 울면 뛰쳐나가야 하고 밥 한번 제대로 먹는 일은 손에 꼽았다. 그런 작은 좌절감들이 합쳐져 거대한 우울이 되었고 바쁜 와중에 거울을 보면 흠칫 놀랄 만큼 엉망인 내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서 더 우울했던 나날들.


힘을 얻으려고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여성학자가 나와 여유로운 웃음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요즘 엄마들은 너~~~ 무 어렵게 아이를 기르는 거 같아요. 좀 쉽게 여유롭게 길러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그냥 아이들이 예뻤어요"

빨래를 개던 내 손이 멈췄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아이를 기르는 게 이토록 힘든데 나는 인성이 잘못된 것일까? 왜 나는 어려운 걸까?

오랜 시간 이 물음에 답을 찾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어렴풋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시대가 변한 거라고. 물론 거기에 내 근본적 결핍이 있기도 하겠지만 어찌 됐든 그때는 그렇게 저렇게 애를 내버려 두고 키워도 아이가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이었고 지금은 뒤꽁무니를 쫓아다녀도 잘 클까 말까 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는 게 병이라고 예전에야 환경이나 폭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었겠나 공포가 있었겠나. 그냥 키우는 거다. 그분의 생년을 찾아보니 1946년이다. 우리 아빠보다도 한살이 많으시다. 그분을 탓하긴 좀 머쓱해진다. 그래도 나는 아직 화가 난다. 평생 여성학을 했다는 사람이, 그래도 젊은 엄마들 생각해서 한다고 하는 말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했으면 안 되지. 조심스러웠어야 했다.

괜한 분노, 욱하는 마음. 이것도 우울의 한 모습이려나. 하여간 나는 점차 아이 둘을 품은 '괴물'에서 '사람'의 모습이 될수록 내 '괴물'의 모습이 자꾸만 후회되고 슬퍼졌다. 그때의 내 모습을 삶에서 지우고 싶은 만큼 힘들었다.


때마침 내게는 쉼터 같았던 동네 지인들 카톡방이 있었고 정색하며 이야기하자면 그 카톡방 때문에.. 그러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나는 이 어둠의 터널 끝자락에 설 수 있었다. 이웃 공동체가 현대사회의 어둠,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카톡방에 "남편이 당직인데 굶었어요"라고 남기면 몰래 집 앞에 따뜻한 홍합 스튜가 배달되었고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같이 마시는 커피 한잔은 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병원 정보를 주고받고 마트에 가면 어디 물건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정말 필요한 것들.


북이 핵을 쏘든 말든 푸틴이 재집권을 하든 말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삶과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제 아이 둘 다 어느 정도 커서 아기띠를 하진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밖에 나가면 아기띠를 한 엄마들, 특히 아기띠를 하고 큰애 손을 잡고 다니는 여자들만 보인다. 하나같이 머리는 질끈 묶고 나머지 손엔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장바구니가 들려있다.


나도 지금 100프로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달려가서 문이라도 열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다. 둘째가 버둥거리다 떨어뜨린 양말... 그 양말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큰애와 씨름하느라 얼굴이 벌건 여자들. 그건 전부 지난 내 모습들이다.


나도 누군가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서 앉았고 아기 양말이 떨어졌다며 주워주었으며 어떤 할머니들은 "제일 힘들 때야!" 말하며 어깨를 토닥토닥해주고 지나갔다. 그런 작은 선의들이 또 모여서 그때 어둠을 버티게 해 줬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그래서 뒤돌아보면 후회만 있을 것 같지만 다시 읽어본 육아일기 속에는 지친 나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애들이 사랑스럽다' '이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다'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것이 의외이기도 하면서 한편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느 뇌과학자가 쓴 책을 보니 사람은 고통을 더 큰 위험으로 인지해 기억장치에 남겨둔다는 게 쓰여있었다. 그래서 내 뇌도 고통만 과대 포장해서 각인시켜둔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육아일기를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이 소중한 하루하루, 애들의 예쁜 짓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내 못된 뇌가 죄다 힘들었던 기억으로 도배할지도 모르니까. ㅎㅎ


그래서 기억할 오늘의 예쁜 짓은 뭐냐고?


애 둘 다 낮잠을 패스하고 일찍 자 주었다. ㅋㅋㅋ 칼퇴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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