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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Dec 12. 2023

비교하지 말아 줄래?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140쪽을 읽고 

왜 우리는 그토록 절박하게 성공하려 하고, 그토록 절박하게 일을 벌일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길동무와 보조를 맞추어 걷지 않는다면, 아마도 다른 북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침착하게 가든, 얼마나 멀리 가든, 자신에게 들리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게 내버려 두라. 사과나무나 떡갈나무만큼 빨리 열매를 맺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라고 할 것인가? 

맺는말, 월든(1854)


손이 큰 나는 음식을 종종 과하게 만들어낸다. 당연히 이웃들에게 나누는 일도 꽤 있었는데 1년여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뒤론 딱 한 집만 음식을 나눌 만큼 친해졌다. 자연스레 그 집으로 빵이며 반찬들이 흘러가게 됐는데 주면서도 '이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여러 번 고민하게도 된다. 


어찌 됐든 잘 먹어주고 항상 맛있다고 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 집 어린이가 먹고 난 뒤 "엄마는 왜 이렇게 못해? 이렇게 좀 해봐~"라고 핀잔준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는 마음이 그만 불편해졌다. 물론 그 엄마야 아이가 그만큼 맛있게 먹었다며 고맙다는 의도로 말을 전한 것일 테지만 말이다. 좋은 의도에서 음식을 나눈 일이 누군가에겐 날벼락 맞는 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잘하는 것이 있는 법. 그 엄마 또한 비교할 수 없이 다른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가 그걸 알아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상할 정도로 그 말이 계속 생각나 괴로웠는데 이유를 며칠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엄마에 대해 깎아내리는 모습이 나의 내면과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워킹맘이었던 친정엄마는 항상 살림에 약했다. 기본 체력도 안 됐고 요리나 청소 같은 것은 애초부터 흥미가 없는 유형이랄까. 어렸을 땐 엄마들이 그런 일을 모두 척척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살림왕 엄마들과 비교도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도 엄마가 돼보니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요리나 살림은 취향의 영역이라 그걸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즐긴다 해도 삼시세끼 항상 맛있을 수도 없고 일정하게 잘하는 건 더 힘들다. 


70대 중반 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밤마다 블리자드의 롤플레잉 게임 'WOW'를 한다.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 세 대를 앞에 둔 채 화려한 컨트롤로 전쟁에 출정한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답게 노트에 빼곡히 데미지 점수와 공략을 적어두고 분석한다. 입담도 화려하고 배려도 잘해서 길드원들에게 60대로 속이고(나이 너무 많다고 하면 부담 느낄까 봐 그러신단다) 인기도 많다. 


내가 그리는 고상한 엄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어찌 보면 우리 엄마야말로 앞서가는 여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이제 현질 하지 말란 말도, 잠 일찍 자란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음식을 나눈 그 집의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다른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거 하면 된다. 


김치는 내가 담가줄게 엄마, 엄마는 그냥 전쟁영웅 하자. 


우리 엄마는 70대 만렙 전사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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