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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minsu Mar 09. 2017

바질

Down Under Food Rhapsody

2월의 막바지.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드디어 끝나가나 보다. 새벽 나절에 시원한 바람이 살짝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마음도 싱그러워지는 듯  마켓에 가지 않겠냐는 친구의 전화에 흔쾌히 응해 오랜만에 주말에만 열리는 Famers Market으로 향해보았다. 시립 아트센터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마켓 입구부터 여러 나라의 음식코너들, 신선한 야채와 과일, 각양각색의 꽃들, 치즈, 즉석에서 짜내어 신선한 주스, 홈메이드 파스타와 피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시각과, 후각을 자극시킨다. 으례껏 장을 보기 전 모닝커피를 주문하고, 잔디밭에 있는 테이블 중 나무 그늘이 있는 자리로 골라 앉아본다. 

곧잘 라이브 연주도 들을 수 있는데 오늘은 젊은 남자 한 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건너편에 앉아있는 한 가족의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풍성한 바질 다발이 눈에 들어온다.

바질…아!  저 바질 다발에 코를 묻고 향을 맡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상상이 절로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였을까? 처음 바질을 접했던 때가? 아마도 호주에 처음 유학 와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드라운 연두색 이파리가 머금은 그 아로마란… 금세 바질과 사랑에 빠지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이태리 요리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바질은 이곳 호주에서도 흔하게 쓰이는 대표 허브 중 하나이며 동남아시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이다.  다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이태리에서 주로 쓰는 Sweet Basil 보다는 좀 더 톡 쏘는듯한 향이 있는 Thai Basil 이 널리 쓰인다.

태국 음식점의 단골 메뉴인 Pad Kra Pao는 바질이 들어간 볶음요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에도 바질은 숙주, 민트와 함께 빠트릴 수없는 존재이다.

또 여러 해 전 태국의 작은 섬인 코팡안에서 열리는 풀문파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 해변에서 밤새도록 온 섬이 미치도록 취하고 춤추는 흥분된 분위기보다, 아슬아슬한 불쇼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맛본 샐러드였다. 참치, 블랙 올리브, 마요네즈에 바질을 듬뿍 넣은, 꽤 낯선 조합이었지만,  짭조름하면서도 비릿한 참치와 부드럽고 느끼한 마요네즈의 뒷맛을 상큼하게 잘라내주며 개운하고 은은한 향까지 남겨주었던 샐러드는 사실 꽤 충격적이었으며 바질을 고명 정도로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 주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요리 코스 수료 후 인턴쉽을 하던 프로방스의 한 호텔에서는 으깬 바질과 올리브 오일로 만든 드레싱을 샐러드에 곧잘 이용했던 기억도 난다. 

널리 알려져 있듯 바질은 토마토와 찰떡궁합이다. 

신선한 바질과 토마토에 통후추를 충분히 갈아 넣고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로 드레싱을 하여 심플한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고, 토스트 한 바게트 슬라이스에 마늘즙을 살짝 바르고 토마토와 바질을 썰어 올리면 간단한 이태리식 식전 요리인 브루쉐타가 된다.

큼직하고 싱싱한 바질을 한 다발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을 근사한 향으로 채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바질 다발이 꽃다발보다 사랑스러워 보였다. 차마 냉장고로 직행시키기가 미안하여 마음먹고 바로 페스토를 만들어 본다. 


Basil Pesto

바질 잎 3컵 정도

마늘 1-2 쪽

파마산 또는 페코리노 치즈 반컵

잣  1/3 컵

올리브 오일 1/2컵


바질은 잎을 떼어 찬물에 가볍게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한다. 푸드 프로세서에 바질 잎과 마늘, 치즈와 잣을 넣고 살짝 돌려준다. 가장자리를 실리콘 스크래이퍼로 정리하며 올리브 오일로 농도를 맞추며 돌려주면 된다. 통후추와 소금으로 마무리하면 끝. 

2/3컵 정도의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


요즈음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10년 전쯤 한국에서 페스토를 만들어보려니 바질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시내의 백화점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가격에 비해 그 양이란 것이 턱없이 적어 가니쉬용으로나 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좀 더 저렴했던 파슬리를 섞어서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100% 바질로 만든 페스토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바질의 아로마와 선명한 초록색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바질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울 땐 바질 파슬리 페스토로 대체해보자.

신선한 페스토에 파스타면을 삶아서 넣고 파마산 치즈를 듬뿍 갈아서 올려먹는 것이 최고의 활용법이며 피자를 만들 때 토마토 베이스 대신 페스토를 베이스로 이용하면 색다른 피자를 맛볼 수 있다.

적은 양이지만 굉장히 아로마틱 하기 때문에 소량만 써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남은 페스토는 보관 시 밀폐용기에 담아 랩을 씌워 보관한다. 이때 랩을 페스토 표면 위에 밀착시켜주어 공기 접촉을 피해 주면 좀 더 오랫동안 색상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주로 페스토를 냉동보관하는데 얼음 두 개 정도의 크기로 나눠 냉동시키고 필요할 때 10분 전쯤 꺼내놓으면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좀 여유가 있는 어느 아침 날엔 한 번쯤 블랙커피와 바질 페스토 오믈렛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해보자. 연초록으로 마블링된 노란 오믈렛을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질 향긋한 바질향...

이 심플한 메뉴가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 틀림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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