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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minsu May 29. 2018

아름다운 사람과 중국 국수

Down Under Food Rhapsody 

 용 언니가 다녀갔다. 내 평생 처음으로 짝꿍을 만나 고향처럼 살던 골드코스를 떠나서 시드니로 이사온지 딱 4개월 만이다. 

차가운 표정의 사람들, 도로 곳곳마다 진행되고 있는 공사를 피해 따라가는 보행자길은 미로처럼 어지럽고,  1초도 참지 못하고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매번 깜짝 놀라기가 일수인데 하다못해 회색 건물들 사이로 부는 바람마저 어찌나 칼날 같은지… 서울도 이랬었나 하며 아침마다 못생기게 입을 쭉 내밀고 궁시렁 거리며 보낸 시드니 생활이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 언니는 얇은 셔츠차림으로 나타났다.  춥다고 춥다고 꼭 두꺼운 옷을 챙겨 오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서두르다 외투를 놓고 왔단다.  

난 추워 죽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언니는 특유의 긍정으로 "상쾌하고 걷기 딱 좋은데?" 라며 이 기회에 핑계로 외투 한 벌 사자며 싱긋 웃는다.  

2박 3일로 왔다지만 도착한 날 저녁시간과 돌아가는 날은 오 전시 간 뿐이니 온전한 날은 딱 하루뿐.  언니가 오면 여기저기 내가 그동안 새롭게 발견한 곳들을 데려가고 싶었는데… 나 참… 이 언니… 몇 번이나 가본 오페라 하우스를 가고 싶단다.  그래도 시드니에 왔으니 오페라 하우스를 봐야 온 것 같다며… 

오페라 하우스를 보고 보타닉 가든을 가로질러 기차를 타고 'NEW TOWN" 으로 향했다. 

큰길을 따라 즐비한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자장면?" 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한국음식점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베트남 국수 지난번 눈여겨보았던 이탈리안 라비올리 집과 냄새가 기가 막혔던 중국 국숫집 이렇게 세 가지를 제안하였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지만 중국집 옵션은 그닥하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드코스트에서 흔히 접해본 중국음식점들은 호주인들 입맛에 맞춰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땅이 얼마나 넓은가?  중국은 지역마다 그 음식의 특성이 꽤 차이가 나고, 중국 이민자들의 역사가 오래된 시드니는 중국 여러 지역별로 음식점들이 다양하다. 특히 중국 북쪽 지방은 얼큰하고 담백한 요리들도 많아 한국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중국집 밖에 세워져 있는 메뉴판을 보더니 언니는 벌써 마음을 굳혔나 보다.  베트남 음식점과 라비올리 집은 가보지도 않고 그냥 이곳에서 먹겠단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가게 안에는 책을 읽으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듯한 손님 한 명뿐이다.  

주방에서는 중국인 아저씨가 커다란 밀가루 반죽덩어리에서 국수를 손으로 늘려가며 뽑아내고 있다.  

언니는 부추와 계란을 속으로 한 만둣국을 주문하고 나는 북경식 자장면을 선택했다. 

예상보다 한참을 기다려서 음식이 나왔다.  "이렇게 늦게 나오는 중국집은 처음이야" 하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지만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신선한 자장면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언니가 주문한 만둣국은 물같이 맑은 육수에 청경채 한 줄기, 6개 만두가 동동 띠어져 있고 그 아래에 또 통통한 국수가 가득…  

장식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 투박한 국수 한 그릇이 어찌나 깔끔하고 맛있던지… 

양껏 먹고도 남은 국수를 포장까지 해서 나왔다.  

 "언니가 그렇게 두꺼운 면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그럼! 좋아하지! 옛날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칼국수 같아" 

 

  지난 12년 동안, 가족 없는 이국땅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한밤중이라도 달려와줄 것이 틀림없는 언니였다.  

손가락 다친 친구의 머리를 감겨주러 가고, 출근해야 하는 부부의 아이를 봐주고, 휴가 간 친구 애완견 밥도 챙겨주고, 설날이면 가족 없이 쓸쓸한 한국 친구들 불러 점심 먹이는 언니.  

공항으로 가는 기차에 언니를 태워 보내는데 목이 자꾸만 막힌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골드코스트에서 내려온 한 마리 시골쥐에게 또 한 번 따스한 기운을 품어주고 용기를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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