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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May 18. 2023

밀려오는 파도 앞을 걷는 두 여자

‘PPS(print print shop)’의 싱글 <대천> 작품 해설

 지난 2023년 05월 12일 발매된 싱글 <대천>의 작품 해설을 적었습니다. 곧 출간되는 김소라 사진 작가의 작품집 '복순투어'에 실리게 되면서 생략된 내용을 추가하고 윤문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 아래 오는 6월 4일까지 진행되는 '복순투어' 텀블벅 주소를 함께 첨부합니다.


 '복순투어' 텀블벅 주소 

https://link.tumblbug.com/j9EM8OELTzb



 시간은 무심히 흘러갑니다. 절대적인 순리에 맞서는 건 당연히 무모한 일일 진데, 용감한 우리의 선조들은 기어이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서보려 한 모양입니다. ‘기억’은 인류에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거스를 도구가 되어주긴 했으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기억’이라는 이 초라한 수단에 의지해 시간이란 망망대해를 부유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는 뜻이기도 했죠. 우리가 기억으로 맞서는 이상 시간은 모든 걸 삼켜가며 밀려올 겁니다. 


 여기 그렇게 주어진 우리의 운명을 보란 듯 빛바랜 사진 몇 장이 있습니다. 이 사진첩을 집어 든 건 다름 아닌 ‘PPS(print print shop)’의 멤버이자, 사진작가인 ‘김소라’입니다. “2021년 만난 진복순(1958년 부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 거주중인 여성)의 사진앨범”. 그녀는 그 낡은 기억의 좌표들을 더듬어가는 중입니다.


 ‘복순투어’는 사진 속 남아있는 장소들의 흔적을 찾아 투어 형식으로 엮어낸 여행 프로그램으로, 참여자들과 함께 사진 속 진복순(과 그녀의 동행)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편집하고 중첩해 전시의 형태로 발표합니다.

 오래된 사진 속 흔적을 따라간다는 것. 그 방식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사진 속 기억들을 쫓아 보려는 치열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가 직면해야 했던 건 실제에 있어선 결코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의 간극이었을 겁니다.     


 그런 그녀의 음악 프로젝트 ‘PPS’를 통해 발표되는 이번 싱글 <대천>의 사운드는 (‘복순투어’에 참여했다면 들어 보았을) 백마강 유람선 이동 중 흐르는 ‘뽕끼’ 있고, 나른한 오르간 사운드를 모티브로 제작됐습니다. ‘PPS’의 또 다른 멤버, 사운드 디렉터 ‘유지완’의 (태국의 옛 싸이키델릭, 신중현 등을 참고했다는) 연구와 공력이 녹아 있는 사운드 위에 김소라 자신이 직접 작사로 참여했습니다.

 부여의 고증된 장소들을 찾아 돌던 ‘복순투어’의 루트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은, 또 다른 사진 속 장소. 실제로 고증된 로케이션이 중요했던 ‘복순투어’ 때와는 달리 대화체 가사와 국적이 불분명한 사운드를 통해 추상화된 <대천>의 장소성은 흐리고 모호합니다. 추상의 세계로 격하된 ‘대천’은 ‘밀려오는 파도 앞을 걷는 두 여자’가 있는 상상적 장소일 뿐입니다.     


 실제의 시간을 거슬러 보려는 시도의 부질없음을 뒤로하고 그녀는 노래를 불러보기로 합니다. 노래 안에서, ‘대천’이라는 추상의 무대 위에서, ‘밀려오는 파도 앞을 걷는 두 여자’, ‘김소라’와 ‘진복순’, 그 기억을 노래하는 ‘PPS’와 ‘시와’, 그렇게 손을 잡고 걷는 “너”와 “나”는 비로소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이 기억도 “모래 위에 발자국”처럼 시간과 의식의 파도에 삼켜지겠지만, 표정들은 흐려져 가겠지만, 또 쓸쓸함에 울게 되겠지만. <대천>은 그래도 함께 걸으며 시간에 잠겨 보지 않겠냐고 부르는 바다의 목소리 같아요. 이 쓸쓸하고 허망한 시간의 파도 앞을 함께 손잡고 걸어보지 않겠냐고요. 마치 이것만이 시간을 거슬러 '너'와 '나'의 기억이 철썩 닿아 잠길 유일한 길이라는 듯이.


https://www.youtube.com/watch?v=Z8eFX3ir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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