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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Aug 15. 2024

-씻는다

나는 롭요가원 간판에 사는 ‘올’이다. 나는 지혜의 여제이며 왕. ‘롭’은 지혜롭다의 ‘롭’에서 따온 것이다.


흰눈올빼미로서 나는 이곳을 관장한다. 이곳은 실개울 같은 육교를 기점으로 세 개의 가게가 징검돌처럼 놓여있다.


새로 단장한 깨끗한 카운터. 유리 진열장. 나는 짬만 나면 그곳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 진열장에는 어떤 것들이 놓일까. 나는 그것을 궁글리느라 비바람에 유실된 둥지의 캐노피를 보수하는 것도 잊었다.


가게 훌에는 흰모래와 실개울, 나팔꽃을 건네는 어떤 손짓. 그런 표상이 느껴진다. 나는 사실 ‘씻는다’라는 말을 잘 모른다. 특히 얼굴을 씻으면서 세수洗手한다고 하거나 ‘마음을 씻는다’는 말 따위.


훌에서 파는 건 파란 나팔꽃 음료다.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천혜의 음료다.


효험: 귀가 트이고 눈이 밝아진다. 비설거지하듯 세상의 모든 잡념을 걸러 먼지잼해준다.


먼 해안에 가지 못해도 ‘롤로 츱츱’이라는 음료를 대신할 수 있다. 히스비커스 꽃과 모린다 열매, 구스베리 나뭇잎으로 만든다는 음료가 그리울 때.


눈이 나빠진 나는 가끔 그 음료를 마시러 작은 활공을 하곤 한다. 흰모래에 말강 유리잔. 파란 음료. 부리를 적셔본다. ‘씻는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부리를 씻고 오늘을 씻고 마음까지 씻는다.


둥지를 고치느라 더러워진 어깨죽지도 슬몃 담가본다. 깨끗하다. 가벼워진다. 흐뭇한 꽁지깃이 나팔꽃덩굴처럼 한들하다.


사실 나팔꽃은 밤의 티모페이 같다. 티모페이 독시체르 같다. 그의 금빛 트럼펫. 악마의 혀. 여름 연못의 맹꽁이 푸른 뺨.


햇빛의 뾰족한 바늘. 그 혹서를 능멸하며 절대 중꺾마 않고 가시독풀이라도 붙잡고 오르는 막강. 현화식물. 왼손으로만 감아오르는 왼손잡이. 꽃말 기쁜 소식.


나팔꽃씨: 항산화 효과, 면역력 증진. 스트레스 진정. 활력 강화

과다복용은 금물입니다.


나는 나팔꽃씨를 물고 간판 속에 들어갔다. 오래된 약절구를 꺼내 잘 빻았다. 그리고 가게 훌에서 떠온 흰개울 물을 마셨다. 푹 잤다.


눈을 씻다. 귀를 씻다. 칼을 씻다. 마음을 씻다. (잠깐, 칼 씻은 물은 마시지 마세요)


내 둥지의 서향, 가게 ‘흰뭇별’에선 청년이 마당에 파란 타일을 깔고 물멍 연못을 만들었다. 참 호롯하다.


북향 루나 케이크 집에선 초생달 모양의 깔조네를 구었다. 사실 깔조네는 긴 양말에서 따온 말이라는데. 노동의 끝, 벗어둔 고단한 양말은 초생달 같아.


발을 씻다. 종내 마음을 씻다. 마음을 훌훌. 훌쩍 떠납시다. 나 올빼미처럼 활공을.


*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올빼미』의 이미지를 빌리다.

*훌은 훌fool이며 ‘훌훌 떠나기’의 훌이다.

*월간 에세이 7월호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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