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충천(意氣衝天)
불여세합의 시대, 의기충천의 남매
강릉 초당 마을을 지나 단풍이 울긋불긋 물든 뜰, 그곳에서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를 만났습니다. 기념관에는 그들의 영혼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하늘을 가른 두 검,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두 혼이었습니다.
조선은 불여세합(不與世合),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자를 배척하는 시대였습니다. 유교의 철벽이 나라를 감싸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칼날이 사람들의 숨결을 가르던 때. 강릉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남매는 그 철벽을 부수려는 의기를 품었습니다.
시로 하늘을 찌른 여인
허난설헌, 이름은 난설헌(蘭雪軒), 시로 하늘을 찌른 여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의 신검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현모양처라는 족쇄를 씌웠습니다. 불행한 혼인, 자식의 죽음, 그리고 스물일곱의 짧은 생. 하지만 그녀의 시는 명검이었습니다.
“광한전 백옥루에 올라 / 은하수 맑은 물을 굽어보노라.”
그녀의 영혼은 현실의 굴레를 벗고, 이상향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그녀의 시편은 한(恨)의 기운을 품었으나, 동시에 세상을 향한 조용한 항거였습니다. 그 시는 동생 허균의 손을 거쳐 중국에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재능 앞에 성별의 벽은 무너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의기충천(意氣衝天)의 증거입니다.
개혁을 꿈꾼 불운한 지식인
허균, 이름은 균(筠), 개혁의 검을 든 사나이. 그는 누이의 시를 세상에 알린 자이자, 조선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자였습니다.
서얼 차별을 베어 내려는 칼날, 신분제도의 모순을 가르는 기세.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은 이야기로 엮어 냈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향한 일격이었습니다.
그의 칼날은 너무 날카로웠습니다. 결국 그는 역모의 죄로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시대를 앞서갔고, 후대는 그를 개혁의 선구자로 불렀습니다.
남매가 남긴 의기의 유산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합리한 세상에 맞섰습니다.
한 사람은 시의 검으로, 다른 한 사람은 사상의 창으로. 그들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으나, 그들이 품었던 의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별과 출신을 넘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은, 그들이 남긴 의기충천의 검기(劍氣)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의기충천이란 부당함 앞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고귀한 정신입니다. 허난설헌과 허균의 생애는 바로 그러한 정신의 살아있는 증거이며, 시대를 초월한 울림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의 영전에 고개를 숙이며, 오늘날 우리들은 그들이 휘두른 명검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음을 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