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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색 공원

성숙한 사람은 모순을 품고 나아갑니다

수화상제(水火相濟)

by 무공 김낙범

대립과 조화

주방에서 물이 끓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물과 불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흔히 물과 불은 상극으로 서로 융화할 수 없는 대립 관계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주방에서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합니다. 냄비 아래의 뜨거운 불과 그 위의 물이 만나야 비로소 맛있는 밥과 찌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수화상제(水火相濟)는 물과 불이 서로 돕는다는 뜻입니다. 얼핏 보면 물과 불은 서로를 소멸시키는 대립 관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융화되면 태극(太極)을 이룹니다.

이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요소가 적절히 만날 때 새로운 가치가 창조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과 냉정, 도전과 안정, 이상과 현실이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됩니다.


내 안의 물과 불

우리 내면에는 불 같은 열정과 물 같은 이성이 공존합니다. 어떤 날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또 어떤 날은 신중하게 한 발 물러서서 현실을 점검하고 싶어 집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는 한쪽만을 강조합니다. "열정적으로 살아라", "냉철하게 판단하라". 그러나 수화상제의 지혜는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불 같은 추진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물 같은 계획과 준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결정 앞에서는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그 안에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어야 지속 가능합니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부족한 면을 보완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성장의 시작입니다.


균형 잡힌 삶의 기술

수화상제의 균형을 잡는 삶의 기술은 물과 불의 리듬을 잘 타는 것입니다.

일에 몰입할 때와 쉴 때의 리듬이고, 사람을 만날 때와 혼자 있을 때의 리듬이며, 배우고 도전할 때와 정리하고 내려놓을 때의 리듬입니다.

한 기업 대표는 오전을 불의 시간으로 정해 미팅과 의사결정에 집중하고, 오후는 물의 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검토한다고 합니다.

어떤 작가는 집필할 때는 열정으로 완전히 몰입하지만, 초고를 완성한 뒤에는 냉정하게 퇴고합니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두 에너지를 오가는 연습을 할 때,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쳐 소진되는 것을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모순을 품고 나아가는 지혜

성숙한 사람은 모순을 품고 나아갑니다. 나 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관대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하며, 독립적이면서도 협력적입니다.

이런 역설적 태도가 가능한 것은 수화상제의 지혜를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합니다. 일과 삶, 성공과 행복,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답은 '그리고(and)'에 있습니다. 물과 불이 함께 있어야 맛있는 밥을 짓고 찌개를 만들듯, 서로 다른 가치들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완벽한 균형은 없습니다. 다만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수화상제의 지혜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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