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라고 강요했습니다. 기사나 보도자료를 써왔던 저는 입니다로 끝나는 존칭 서술어의 글이 낯섭니다.
그런 이유에서, 살갑게 쓸 수 있는 육아이야기에도 급하게 전달할 내용처럼 짧은 서술어를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존칭을 더한 글을 쓰는 이유는, 행여 이 글을 읽고 가슴 아플 딸, 같은 아픔을 지녔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 때문입니다.
17세 딸에게 한 달 전, 첫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캐내 물을 순 없었습니다. 쿨한 엄마인 척해야 했으니까요.
“계부와 크며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했대. 그런데도 다 이겨내고 밝아서 그 아이가 좋아~“
가정폭력이라니.. 꼭 아픔이 있는 아이였어야 했나, 소리치고 싶었지만 ”네가 좋으면 엄마도 좋아 “라고 마음을 숨겼습니다.
화창했던 어느 날, 딸은 데이트 준비에 바빴습니다.
집과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만난다기에 의아해 물으니,
”그 친구가 다니는 정신과가 거기거든.. “
정신과? 놀랐지만 요즘 애들 학업스트레스로 상담받는 아이도 많다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보려 애썼습니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귀가했지만 혼내지 않았습니다. 알아내야 할 정보를 위해선 인내심을 발동해야 했으니까요.
어디가 아프니부터 물어봤습니다. 자세히는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 맞다. 걔 약봉지 나한테 있다. 약만 빼가고 내 주머니에 쓰레기라고 쑤셔 넣었거든”
아이에게 약봉지를 뺏어 검색해 보니.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즉, 망상과 환각을 감소시켜 사회적응을 도와준다 ‘
내가 건강하고, 상대가 병약하다면 병약한 사람이 약자이고 약자를 존중하며 살겠다 다짐한 삶이었습니다.
어떤 병이든 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왔지만 단 하나 조울증이라 불리는 양극성장애는 우리 부부에게만큼은 큰 아픔입니다.
도련님은 20대부터 조울증을 앓았습니다. 약물을 써도 증세가 심해져 몇 차례나 입원을 반복했습니다. 좀 나아진 것 같다가도 조증이 오면 본인 스스로 신이 된 듯 재산을 탕진하고 말리는 가족에게 폭력적으로 돌변했습니다.
남편은 신혼 때도 도련님병세가 나타나면 뛰쳐나가 제어해야 했었지요. 그 병을 아직 잘 모르던 나는 그런 남편에게 서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나 지났지만 그 병은 증상의 심각성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부모님, 남편 모두 지쳤고, 지친 상태로 여전히 그 병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어느 날부터 우리 부부에게 도련님 이야기는 금기어 같은 게 됐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목도해 왔던 그 병의 이름을 검색창에서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딸의 남자친구로는 용납이 안 되겠다.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도련님처럼 악화되지 않고 완치할 수도 있지만, 아니! 꽃처럼 예쁠 나이 꼭 완치되길 바라지만.. 첫사랑의 달콤함을 깨는 나쁜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소리치진 않았습니다. 가족의 비밀처럼 간직했던 조울증 도련님의 이야기를 해주며 이별을 은연중에 종용했습니다.
딸은 놀랐습니다. 물론 난 이 모든 말의 운을 떼기 전, 널 위한 이야기라 인덱스를 붙였습니다. 사실 딸의 상처를 보기 싫어하는 엄마의 이기심이 더 컸다는 걸 나만은 압니다.
미안합니다.
딸에게,
딸을 좋아해 준 그 남자 친구에게,
이별의 구실을 만들어 준 도련님에게,
그리고,
감사합니다.
미저리처럼 추적하는 엄마를 본인을 위한 지나친 걱정쟁이로 생각해 주는 딸에게,
실수로 딸 주머니에 약봉지를 넣어준 남자 친구에게,
그래도 버티고 살아내는 도련님께,
그래서 나는,
속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