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 카뮈를 시기하며
내 세계에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은 1989년 겨울, 부산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외에 어느 하나 예측 분간할 수 없는 세계에서 다행히도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았다.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것을 취미로 삼은 나를 친구들은 괴짜라며 놀렸다. 하지만 국어 선생니들에게만큼은 예쁨 받았다. 국어 성적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당신들이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일별하고 그 책을 따라 읽는 제자가 기특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는 지금은 휴가를 쓰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지금도 이런 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적어도 내 주변사람 중에선)
내 나이 스물일곱이던 그 여름에도 도서관으로 휴가를 떠났다. 이미 여러 번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내리막길 달리듯 빠르게 읽고 책을 덮었다. 그러다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에 눈이 갔다. [이방인]은 작가가 스물아홉에 쓴 소설이었는데, 그 책을 육십 년 후에 내가 읽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질투가 솟았다. 담배를 문 채 웃고 있는 사진 속 그가 얄미웠다.
그 책을 다시는 읽기 싫었다. 다시 읽는 날엔 그에게 패배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건방지고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젊은 패기로, 실로 갑작스럽게 난,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자니 읽어야 할 책이 많았고, 써야 할 옛이야기는 더 많았다. 그렇게 이년이 흘러 내 나이 스물아홉. 카뮈가 [이방인]을 발표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난 문득 떠오른 카뮈의 미소에 항복했다. 그 미소를 다시 보기 위해 [이방인]을 펼쳤다. 그리고 내 인생 목표로 삼은 그 길이 그제야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를 펼쳐 들었다.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가며, 난 다시 한번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