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톰양 Mar 28. 2019

잠시 거북이에 미쳤던 이야기

하와이에서 거북이와 남편을 교환할뻔했다. 

왜 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거북이에 대한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TV에 거북이가 나오는 장면에서, 모아나가 아기 거북이를 구해주는 장면에서도. 언제나 상상을 했다. 투명한 물빛 사이로 유유자적 다니는 거북이 옆에 내가 있다면. 그 녀석 들고 같이 바닷속을 누빌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래서인지 하와이로 여행 계획을 잡았을 때 그저 신이 났다.  호놀롤루(Honolulu)가 있는 오아후(Oahu) 섬과 할레아칼라(Haleakalā)가 있는 마우이(Maui) 섬에서 며칠을 보내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물에 들어갈 수 있을 때는 무조건 물에 들어가자. 남편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계획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다. 할레아칼라 일출이 멋있다고 하지만 거북이 마법에 빠진 나는 동네 뒷산 일출 정도로 여겨졌다.


지금 와서 말하건대 할레아칼라 일출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아후(Oahu) 섬에 도착한 날 거북이가 일광욕을 많이 한다고 알려진 라니아 케아 비치(Laniakea Beach)로 냅다 달렸다. 기대감이 높아서인지, 단지 운이 없어서인지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만 가득할 뿐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회심의 장소를 하나 발견했다. 마우이 섬의 매케나 비치(Makena Beach). 일명 터틀 타운(turtle town). 


라니아 케아 비치에서 괜히 거북이 그림만 끄적였다.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파도와 성게였다. 그날따라 파도가 조금 세고, 물고기가 많은 바위 근처에는 성게가 가득하여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내가 성게가 될 판이었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있는 건 안되겠다 싶어 나오려는 순간, 무언가 거대한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보고 또 봐도 그건 거북이었다. 유레카. 이럴 수가.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신이시여. 이런 문장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눈앞에 나타난 거북이가 그저 신기했다. 파도 따라 수영하는 거북이를 보며 너무 빠르지 않은 스윙댄스가 생각났고 마치 나와 춤을 추는 듯 느껴졌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물속에서 마주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상만 했던 그 황홀함 그대로랄까.


다시 가서 건진 진짜 거북이가 사진!


거북이와 함께 춤을


나만 보는 건 반칙이니 남편을 급히 불렸다. 지금이야! 빨리!라며 재촉하는 나에게 조금 진정하라며 이야기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올 때까지 거북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보기 위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빠른 거북이는 점점 눈앞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이 순간을 같이 하고픈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때 물 밖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남편의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 말이다.


비상상황이었다. 거북이고 뭐고,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남편의 아픈 소리가 이어졌다. 자기는 수영도 못하는데 성게가 가득하고 물살이 빠른 쪽으로 부르면 어떻게 하냐며, 너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몸을 가눌 수 없었고, 바위에 기대서 겨우 일어나 보니 남은 건 손에 박힌 성게 가시밖에 없다며. 그때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미쳤구나. 거북이 하나 보자고 남편에게 피를 보게 하다니. 성게 가시로 끝나서 다행이지. 정말 위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하와이 여행이 온통 거북이로 가득 차 있었던 내 모습이 미안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성게 가시는 스스로 녹는다길래 하루 정도 참아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도 내내 죄인 모드로 남편에게 사죄하며 충성했다.


다행히 저녁이 되니 다친 손은 진정이 되었고, 저녁을 기분 좋게 먹은 남편이 물었다. '그래서 거북이 보니 좋았어?'라고 나는 이때다 싶어 액션캠을 꺼냈다. 내가 정신없이 보기만 한건 아니고 흔적을 남겼다며, 너도 영상을 보면 아픔이 조금은 사라질 거야, 그런데 액션캠은 모니터가 작으니 핸드폰으로 옮겨서 크게 영상을 같이 보자. 급 신난 모드로 액션캠에서 영상을 찾아 전송하기를 눌렀다. 그런데 나의 신남 모드가 문제였다. 너무 신이 나서 인지. 그냥 바보여서 인지. 나는 전송하기 대신에 아무렇지 않게 삭제를 눌렀다.어떻게 upload와 delete를 착각할 수 있는지 지금도 설명은 되지 않지만, 나의 무의식 속에 손가락은 미쳐서 삭제를 눌렸다. 그리고 정확히 5초 후에 깨달았다. 방금 내가 무얼 한 건지. 식은땀이 흘렸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진심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장난하지 말라며 웃었지만, 그건 실제 상황이었다. 장난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정말로 delete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나도 남편도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 어렵게 울기 시작했다. 남편 말로는 자기가 죽어도 그렇게 울지 않을 거 같다며. 정말 나는 서러웠다. 온통 거북이에 집착했는데, 그것 때문에 남편이 피까지 보았는데, 입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봤던 거북이에 대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손가락을 때리면서 꺼이꺼이 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드디어 거북이 마법에서 깨어난 거라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렇게 나의 첫 거북이는 사라졌다. 나의 콧물 눈물과 남편의 웃음과 함께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나는 거북이를 보았다. 남편의 용서로 다시 찾은 매케나 비치에서 거북이를 보았고, 다음날 하나 로드(road to Hana)로 가던 중 호오키파비치(Ho'okipa Beach)에서 일광욕하는 거북이를 보았다. 아쿠아리움이 아닌 자연 날것의 거북이가 주는 기쁨을 충분히 누렸다. 그리고 누군가 하와이 마우이섬을 간다면 거북이 비치를 추천할 것이다. 자연에서 거북이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경험이므로, 물론 성게가시를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할 것이다.



호오키파비치의 거북이 무리들. 너무 많아서 사실 당황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비치를. 바보같이 거북이 마법이 끝나고서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찾았다. 봄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