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의 글쓰기 8차시 후기
매주 화요일 밤마다 시집 한 권을 스물 일곱 명 함께 읽고 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출발하여 현재 이소호 시인의 시집까지 왔는데 이소호 시인 시집에 최승자 시인이 롤모델이라는 말이 있었다.
학인들은 화요일마다 골라 온 시를 낭송하고 그 시를 고른 이유나 소감을 나눈다. 그러니까 사실 일주일 내내 적어도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고 있는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
특별하게도 은유샘이 한 명의 시인을 섭외해 북토크를 열어 보겠다고 하셔서 더 흥분된 마음으로 감응에 갔다. 섭외하신 시인은 친분이 없이 출판사에 이메일을 물어물어 초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은유샘은 살짝 긴장하고 계셨다. 그게 더 특별했다.
이소호 시인은 수업 장소 말과활 바로 옆 카페 통창 자리에 미리 와 있었다(지나가다 부기가 알아보았는데 「캣콜링」 시집에 나온 사진보다 나이들어 보여서 나는 그분이 아니라고 우겼다. 민망ㅋㅋ
(학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얘기하니 '더 젊을 때 사진 찍어놓고 계속 사용하는 거 국룰 아닌가요' 해서 정답 인정 )
오늘을 위해 우리는 은유샘과 함께 시인 맞이 준비를 설레며 했다. 학인들은 시집 읽고 생긴 질문과 읽다가 감응한 시 필사와 소감을 카페에 올렸다. 바람이 질문을 분류하여 정리했고, 이소호 시인은 미리 질문지를 받았다. 질문지에 빼곡히 적어온 글자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소호 시인은 88년 2월생. 즉흥적이고 저지르고 수습하는 편. 이날 일주일 만의 외출이라고 했다. 집순이 체질. 반려견도 집개 체질이라 서로 잘 맞는다고(산책은 콧바람 쐬어 주는 걸로 매우 만족)
텐션이 높아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 손짓과 몸의 움직임이 발랄했다. 한 마디를 하고 은유샘 쪽으로 몸을 휙 기울이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을 오므렸다 폈다 광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켓을 입었다 벗었다, 머리카락을 연신 귀 뒤로 넘겼다. 이에 비해 은유샘은 긴장된다고 하면서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차분하고 편안한 말투로 질문을 하고 질문과 질문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북토크와 글쓰기 수업이라는 그 시간의 정체성에 계속 깨어있었다. 질문하고 답을 듣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은유샘의 생각을 덧붙이고 우리가 알아둘 내용을 들려주었다.
청탁 받은 계약일보다 무려 2달 전에 원고를 보낼만큼 마감을 철저히 지키는 편. 약속에 강박이 있다고 하는데 성실+강박은 사람을 꽤 압박하는데 괜찮을까? 슬쩍 걱정이 되었다. 편집자는 마감 잘 지키는 작가를 매우 좋아한다. 하나의 면만 있지는 않은 인생의 한 귀퉁이를 또 보았다.
다음은 질의응답 정리
- 시집이 우화컨셉이라고 밝혔는데 컨셉의 시작이 궁금하고 소설처럼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배경 혹은 화자의 시선 등을 정하고 작업했는지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만나면 그때그때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창작하는지 궁금해요.
저지르고 수습하는 스타일임. 인터뷰 끝에 다음 작품 컨셉을 묻는 질문이 있는데 그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을 하고, 그건 자신과의 약속이니까 지키려고 글을 쓰면 말했던 그 책이 나온다. 책이 나오면 인터뷰를 하고 거기에서 컨셉을 묻고 답을 하면서 그게 약속이 되어 또 다음 책을 쓰는 식. 다음엔 세계와 관련한 책이 나올 예정.
: 글을 쓰기 전에 몇 개씩 미리 계약을 해두는 관행에 대해 은유샘은 우려를 표하였다. 쓰기 싫을 수도 있는데 정해둔 것 때문에 쓰는 게 맞나 하는.
- 일반적인 시와는 형식을 달리하는 시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예를 들면 핸드폰 전화번호부의 즐겨찾기 목록을 캡쳐한 <우리 집인 동시에 집이 아닌 것>, 얼핏보고 패턴으로 착각한 <밑바닥에서>, <빙고는 내 이름>, <주사위 놀이> 등등. 이런 독창적인 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는지요? 새로운 형식의 시에 도전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그리고 작가님의 창작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분이 있다면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내가 흥미가 있어야 시를 쓴다. 쓴 것을 좋아해주는 반응이 있으면 더 시도해본다.
창작 세계에 영향을 가장 크게 주고 있는 사람은 단연 동생. 정확히 1살 차이. 많이 싸웠다. 이 말 들으면 웃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원래는 미문을 쓰고 싶어했는데 동생 때문에 화가 나서 글로 썼다. 그걸 동생이 읽더니 시가 된다고 책을 내라고 해서 냈다. 반응이 좋았다. 화나서 쓴 문체가 나한테 맞나? 싶었다.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아야 하는 거 같다.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면 선생님에게 맞추는 글을 쓰게 된다. 자기 맘대로 해야 자기 목소리를 찾는 거 같다.
은유샘도 이 말에 절대 동의. 내 맘대로 해야 자기 톤, 에너지,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
<수록 시에 관한 질문>
- 시인의 말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
에서 시인님께 볕과 빛은 어떻게 다른가요?
볕은 현실적이고 빛은 허상, 꿈, 미래를 의미하는 것 같다. 볕은 안주할 수 있는 곳이고 빛은 미래를 향한다. 빛을 거부할 만큼 집에 가지 않고 싶다는 뜻.
<멜버른에서 온 편지>는 처음부터 녹음이 기획된 것인지 당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동생이 호주에 영주권을 갖고 산다. 글을 쓸 때마다 내 시의 첫독자이다. 녹음은 한국에 왔을 때 녹음한 동생의 목소리다. 시를 읽어보더니 '이거 내 말투가 아닌데?'하며 자기 말투로 고쳐주었다.
- p84 '이 시집 진짜 재미있다' 문장을 보고 문득, 생각난 질문입니다^^ 시인님께 재미있는 시(시집)란 어떤 의미일까요? 또, 좋은 시(시집)란 어떤 시(또는 시집)를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가 미쳤나?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시는 미디어를 이기는, 다음이 궁금한 시. 그걸 위해 많이 노력한다. 모두에게 '좋다'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었다. 캣콜링을 낸 후 이 시집은 읽은 사람의 반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받아들이기 시작.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 '아버지가방에들어오신다'(40쪽)의 마지막 부분 '아버지가 쓰다 만 시가 펼쳐져/있다/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가 인상적이었어요. '아버지의 쓰다 만 편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가 아니라 '오직 나뿐'인 이유가 있을지, 작가님은 어떤 마음을 담아 쓴 구절일지 궁금합니다.
우리집이 할머니댁에 얹혀 살 때, 아빠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내가 쓰던 방을 아빠에게 내줘야 하는 날이 있었다. 아빠가 내 이부자리에 들어갔다 나왔으므로 평소와 달라진 미세한 차이를 아는 것은 나뿐이었다는 감각으로 한 말이다.
<시 작업에 대한 질문>
- '계속해서 생각을 불러오고, 창작과 표현의 동력이 되는 사건이나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온갖 세상 일에 관심이 있는 집순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제일 많으므로 '집'에 대해 쓰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
다큐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요새 유대교인이 안식일에 뭘 하는지 궁금해서 공부하고 있다. 유대인의 유튜브도 본다. 내가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쓴다.
- '광신도'를 읽으며 이 시는 작가님의 직접 경험일지 아니면 간접 경험일지 궁금했습니다. 시의 소재는 직접 경험의 소재만 활용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간접 경험도 소재로 사용하시나요?
시의 모든 것이 창작. 가짜이다. 감정만 진짜고 나머지는 허구로 쓴다. 나조차도 헷갈리게 진짜처럼. 그래서 써 놓고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래야 재밌고 독자들이 다음 시를 읽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주도 다 지어낸 것.(각주도 시이자 장치임)
여러 가지 일을 하나로 만들면 누구 이야기인지 알 수 없어진다.
- 고2 학생의 질문입니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짧은 길이로 연을 나누어 쓸 때와 산문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말을 어떻게 전달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선택한다. 한 호흡씩 머무르며 읽어주기를 원하면 행갈이를 하고 속도감, 리듬감이 필요하면 산문으로 쓴다. '다정한 이웃과 층간-소음 사이에 순장된 목소리'의 경우는 빠르게 읽기를 원했으므로 산문으로 쓰는 식.
그리고 시는 행갈이를 하면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 쓰고 일단 다 붙여서 읽어본다. 그래도 내용이 괜찮으면 그때 행갈이를 해도 되겠다고 판단한다.
<가족>
- 가족 이야기를 쓰는 이유
: 집에만 있으니 환경이 가족. 같이 있으면서 싫지만 싫으니까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우리 가족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가 동생이 화가 많아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나도 오라고 했다. 그래서 가서 묻는 말에 대답을 했더니 의사가 '집안에 문제가 많구만'이라 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 가장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족의 존재는 누구이며, 어떤 감정인가
엄마도 아빠도 다 특이하다. 특히 엄마. 어릴 때 일기를 썼는데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그냥 좋았다고 썼다.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엄마가 일기를 보더니 이렇게 거짓말로 쓰면 어떻게 하냐고 있는 그대로 다시 쓰라고 했다.
아빠는 대안학교 교사인데 폰을 대학 1학년 때에 사주었다. (다들, 탄성. "너무 했다") 그 뒤에 가족 간의 일을 그대로 다 써서 교무실에서 내 일기가 인기를 얻었다. 집안 망신거리를 다 썼다(웃음)
- 가족 이야기를 쓸 때 어려움은 없는지 (적나라한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전혀 어려움이 없다. 모두들 내 시집에 본인이 나오는 걸 좋아한다. 하나의 캐릭터로 생각해서 '이번에 내 역할을 그거야?' 한다.
- 타인의 이야기 쓸 때 어디까지 어떻게 쓰는 게 좋은가?
: 그 사람인 줄 몰라보도록 쓰면 된다. 또는 그 사람에게 허락을 받는다.
- 가족 이야기를 쓴 후 감정 또는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나?
: 속이 시원하다. 정신 건강에 좋다. 쓰다가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때는 쓰기 중지 기간을 갖는다. 글쓰기 자체를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시를 안 쓰면 소설을, 소설을 안 쓸 땐 시나 다른 산문을 쓰는 식이다. 또는 메모장에 글을 쓴다.
*기타*
시에 들어갈 그림은 들어갈 위치를 정해놓고 그림 작가에게 청탁을 했다. 그림만 죽 보면 스토리가 이어진다.
Q. 「 캣콜링」 이 나왔을 때 문단 내 성폭력이 크게 이슈가 되었던 때이고 마침 이 시집이 그런 내용이 많아서 화제가 됐다. 이 시집의 창작 의도는?
나는 문단 내 성폭력이 사건화되기 전 2014년부터 성폭력 얘기를 쓰고 있었고 그걸 책으로도 냈다. 그냥 여성으로서 겪은 일을 쓰고 있었는데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
내 속이 편하려고 쓴 거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일은 겪은 사람들에게 내 시가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북토크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몰입하면서 열기로 후끈하여 창문을 열었다.
잠시 열기를 식힌 후 사인회를 가졌다.
이소호 시인은 미니 스티커를 한 뭉치 꺼냈다. 자신의 시집, 소설, 산문집 마다 책의 표지를 미니 스티커로 만들어 둔 것. 환자복 무늬의 손바닥 크기만한 가방에 넣어 왔는데 사인하면서 일일이 붙여 주었고, 네모 서각을 가져와 찍어주었다. 시집 마다 사인 글귀가 따로 있었다. 시인의 책을 모두 갖고 온 학인의 경우 다 다른 스티커와 사인 글귀를 받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면 폰을 뒤적여 보고 써주었다. 여러 모로 놀라웠다.
시인은 시를 폰의 메모장에 직접 쓴다고 한다. 거기 폴더로 분류를 하여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때 그때 적어두고 어떤 것은 오래 묵혔다가 적당한 때를 만나면 꺼내 사용한다고 한다. 요즘 시인은 시 쓰는 도구도 다르구나. 감각이 점점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유샘은 폰 화면은 너무 좁아서 글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답답함을 말했고 나도 공감. 원고지에 쓰는 사람, 노트북에 쓰는 사람, 폰에 쓰는 사람이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세상이구나.
우리의 합평에도 시인은 같이 참여했다. 나는 시인의 옆의 옆 자리에 앉았는데 합평 글에 열심히 메모하며 읽고, 다른 학인의 말을 들으면서도 메모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역시 성실함!
이소호 시인의 북토크는 감응 수업에 그동안의 공기와는 또다른 빛깔의 싱그러움과 활력을 주었다. 신선한 느낌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