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천
2024 첫 영화. 은유 작가의 인스타 추천을 읽고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동네 영화관에는 상영하지 않아서 잠실까지 갔음. 상영 시간 선택지가 좁은 편.
보고 나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몇 안 되는 영화. 다시 보면 놓친 대사가 많을 거 같다. 의미심장한 말이 많았다. 특히 11살 아들의 말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판사를 제압한 대사. 나도 놀랐고 곧 동의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독이 누구지? 하게 된다. '쥐스틴 트리에' 여성 감독이다. 내 경험에 한해서, 작품에 표현된 인물들이 너무 섬세하게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거의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오늘 검색해서 사진을 보니 역시!(이러다 성별에 편견 생기겠어)
작품의 시작은 유명 작가 '산드라'가 학생의 논문 쓰기에 조언을 주기 위해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산드라는 술을 한 잔 하면서 인터뷰를 한다. 학생은 녹음을 해가며 열심히 준비한 질문을 하고, 산드라는 개인적인 대화도 해 가며 편안하게 대화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굉장히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산드라는 남편이 일할 때 저렇게 한다고 말하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둘의 인터뷰는 중단된다. 학생은 떠나고 집에 있던 아들은 개 스눕과 집 근처 산책을 다녀온다. 아들이 시작 장애가 있다.
눈에 띄는 건 이들의 집이 산꼭대기에 있다는 것이다. 집 앞으로 펼쳐진 설산의 경관이 대단하다.
산책에서 돌아온 아들은 눈 밭에 머리에 피흘리며 숨져있는 아빠 사무엘을 발견한다.
남편, 아내, 아들 단 3명만 있는 집에서 남편이 죽자 아내가 수사를 받는다. 아내는 무죄를 주장하는데 동시에 남편이 자살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면서 가족의 사연, 부부의 내밀한 갈등이 법정에서 해부된다.
변호인 뱅상, 의뢰인의 집에 와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앞으로 볼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보고 와서 읽어주세요
모든 인물에게 다 공감이 가게 짜여진 대본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입장에서 외부 세계를 보고 자기 입장에서 해석한다. 거기에 성격적 요소가 더해져 더 차이가 벌어진다. 전혀 다른 타인의 마음은 짐작만으론 실체를 알기가 어려운 거 같다. (대화가 필요해~)
산드라와 사무엘이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점을 대비해보면
남편 사무엘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으나 소설을 쓰다가 필받아서 중간에 끊지 못하고 보모를 보낸다. 보모가 아이를 데리고 오다가 아이는 교통사고가 나서 시신경을 다친다.
아이 상태를 장애로 인식하고 죄책감을 크게 느낀다.
아내 산드라
처음엔 남편을 원망했으나 (원인 제공자로서)
일주일 정도 후엔 평안을 찾고(재판장이라 그렇게 말했을 수 있다. 남편에게 원한이 없어야 하니까)
아들을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크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 부분에서 남편과 크게 차이가 난다.
남편 사무엘
아이를 위해 홈스쿨링을 자처한다. 많은 역할을 남편이 한다. 부인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 산드라
홈스쿨을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말렸으나 남편이 하겠다고 하여 받아들인다.
홈스쿨에 책임을 느끼거나 같이 참여하지는 않은 걸로 보인다. 작가로서 소설 쓰는 일에 시간 뺏기지 않고 몰두하고자 한다. 아들 픽업 당번은 수행.
남편 사무엘
자기 아이디어를 부인이 표절했다고 생각한다.
쓰다가 만 소설은 그래서 이제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긴다. 부인에게 아이디어를 뺏겼다고 인식함.
아내 산드라
남편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소설을 쓰다가 그만두자, 본인이 그 아이디어를 사용해도 좋겠는지 묻고 남편의 동의 하에 본인의 소설로 완성했다고 한다.
남편이 쓰다가 만 소설은 남편이 원한다면 원래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 쓰고나서 본인은 남편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면 된다고 함.
남편 사무엘
가족을 위해 자신은 늘 배려하고 희생한다. 그런데 부인은 자기 위주로 한다. 언어도 부인이 가족 간에 영어를 쓰도록 요청해서 가족들이 영어로 대화함, 섹스에서도 부인이 자기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한다고 생각.
부인의 냉정함에 지긋지긋하다고 절규
아내 산드라
남편이 희생자를 자처하는 피해망상이 있다고 생각.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면서 상대에게 탓을 한다고 여김.
산드라는 독일인, 남편은 프랑스인. 둘다 할 수 있는 영어로 소통하자고 한 것일 뿐. 내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쓰는 것이 자신의 위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 프랑스 산골에 살자고 해서 이사해 온 점은 자신이 남편에게 맞춘 것이라고 주장. 자신이 웃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동네 사람에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
남편 사무엘
부인의 외도로 상처받음.
아내 산드라
아들 사고 이후 남편이 부부관계를 끊자 성욕 해소로 외도한 것이지 남편에 대한 마음은 변함없다고 얘기.
영화에서 부부의 입장이나 주장이 흔히 나오는 구도와는 바뀐 상태인 것이 차이일 뿐. 이들의 갈등은 우리의 친구, 부부, 동료 사이에서 늘상 있는 것이다.
표현하느냐, 갈등으로 인해 문제가 드러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다만 이것이 영화에서 너무 섬세하게 실감나게 표현되고 비극적인 시공간에서 표출되도록 짜여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내 속의 감정들이 낱낱이 해부되는 느낌이 들면서 괴롭기도 하고 아, 그가 그랬겠구나 싶기도 하고 어느 누구에게 기울어지지 않은 채 왔다갔다 한다.
아마 내 성격으론 산드라 쪽의 입장에 있을 때가 많을 거 같지만, 결정적으로 사무엘이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거나 소설을 쓰고 싶어서 교수직을 그만 두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려고 하다가
뜻하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산드라는 힘이 되어주지 않은 것 같다. 부부로서 '네 일이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해'라는 듯한 느낌을 가졌을 사무엘의 마음에도 공감이 돼서
딱 산드라쪽에만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닌, 말그대로 왔다갔다. (감독에게 감탄을)
산드라 입장에 갔던 말을 이거다. 변호사가 말한다.
"산드라에게 잘못이 있다면 남편이 실패한 분야에서 성공한 것 뿐이다"라고.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이 자살해서 자신은 졸지에 살인자가 될 처지에 놓인 아내. 아들이 부부에게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아들을 둘러싸고 싸우기도 했음을 비롯하여 외도와 성관계 얘기까지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남편 성격의 결함을 드러내 주장해야 하는 상황. 너무 기막히고 억울하며 괴로울 것이다. 복잡한 내면을 연기한 '산드라 휠러'의 마음에 쏙 빠졌다 나왔다.
남편 사무엘은 조연급으로 부엌에서 있는 말 없는 말 쏟아내며 싸웠을 때에야 존재감이 드러난다.
이 싸움 장면은 남편의 녹음 파일이 발견되어 드러나 극의 전환이 일어난다.
부부가 잘잘못을 따져 유무죄를 갈라야 하는 상황은 늘 비극이다. 감정과 관계의 맥락을 객관화하여 드러내는 것이 가능한가? 그래서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된 후에 산드라의 말 또한 너무 극공감된다.
"이겼는데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재판은 산드라에겐 애초에 최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아들은 엄마가 아빠를 죽였을까 봐 두려웠고
엄마는 아들이 재판 전 과정에서 남편과의 갈등 내용을 낱낱이 알게 된 이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다.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 일어난 가족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게 되어 후유증을 얻은 관객이 되었다.
아들 다니엘의 의미심장한 대사, 곱씹어보게 된다.
남편은 개 스눕을 빗대어 떠나게 되면 떠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죽음을 아들에게 슬쩍 예고했다. 관객도 아들도 재판의 막판에 엄마의 증언을 듣고 깨닫게 된다.
아들이 21살이 아니고 11살인데 자신이 꼭 재판의 전과정을 방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재판장에 들어오지 말 것을 설득하는 판사의 논리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저렇게 성숙하고 똑똑하다니! 복잡한 것은 다 치우고 핵심만 치고 들어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아빠가 자살임을 결정적으로 증언하는 막판의 역할은 이 영화의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