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gon Huh Aug 27. 2017

마케팅과 기획의 차이

약은 약사에게- 역할의경계가 모호해지면 책임의 경계가 흔들린다. 

이 글은 내가 2012년 9월에 썼다. (후아 진짜 옛날이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마케팅 직군 소개서를 이틀 밤을 새가면서 정리해서 인사팀에 넘겼는데, 며칠 후에 '마케팅은 기획이랑 똑같아서 그냥 기획만 올리기로 했다'는 답을 받았다.
그 날 밤 너무 속상하고 섭섭한 마음에 쓴 글인데 허접해도 다시 읽어보니 과거의 나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 



Q. 기획자와 마케터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감히..제가 두 직군을 한번 구분해보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기획자는 황야의 벌판 위에 어떤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땅의 이런 환경에서 어떤 집을 지어야 할지를 살펴, 적합한 구조와 재료를 결정합니다. 

기획자는 어떤 집이 탄생할지 미리 밑그림을 그립니다. 

기획자가 실제 나무를 자르고 돌을 고르진 않습니다. 기획자는 도면을 그립니다.

개발자가 그 도면을 가지고  집을 실제로 짓습니다. 

마케터는 이 집을 지은 기획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내고, 이 집을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그 집이 비어진 채로 홀로 황량히 낡아지지 않도록.

마케터는 이 집이 왜 살기에 좋은지 사람들에게 알아 듣기 쉬운 말로 설명을 하고 

때로 이 집의 어떤 문제점 때문에 사람들이 거주를 꺼린다면, 그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난 뒤 

창가에 화분을 더 놓거나, 담쟁이 넝쿨을 엮거나, 이집까지 오는 길을 알기 쉽도록 지도를 그리거나 차편을 알려줍니다. 

마케터가 이 집을 짓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어진 집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고, 이집의 존재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집에 살 사람은 기획자도,개발자도, 마케터도 아닌 고객입니다. 

마케터가 그 고객에게 이 집의 가치를 전하고, 반대로 고객의 요구사항을 수용합니다.

기획자는 마케터의 전달내용을 듣고 끝없이 집을 보수합니다. 

 



Q2. 그럼 마케팅은 기획의 한 부분 아닌가요?

커다란 플랜 위에서 보면 기획-개발-마케팅-디자인이 모두 한 장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마케팅 만이 기획에 종속된 개념이 아니며 그렇다고 분리된 개념도 아닙니다.

기획과 마케팅을 종속-대등 그 어떤 개념을 둘 것이냐는 철저하게 그 일을 처음 발의한 사람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 이야기 하자면 회사 주인(사장)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마케팅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사회는 지금까지 없었고 

(다시 말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나날이 마케팅의 위상과 중요도는 높아졌고)

마케팅이 기획에 종속되지 않고 핵심부서로 대등하게 존재하는 회사가 많아지는 추세이며 동시에 

높은 퍼포먼스를 내고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잘 나가는 회사들의 조직도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경향성입니다.)

하지만, 기획자가 처음 시작을 열었고, 마케팅이 그 뒤에 이어서 일을 하는 것은 맞습니다. 

분명히 시간적 순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가 일의 경중이나 조직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되어 굴러가는 일도, 마케팅의 역할에 따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탈바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Q3. 마케터가 기획도 하고, 기획자가 마케팅도 하는것 아닌가요?


2번질문에서 설명드렸다시피,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나 정답은 아닙니다.

그 회사 사장이 기획자에게 마케팅도 시켰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마케팅을 이해하는 기획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총괄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대게 이런 경우 회사의 규모가 작거나 맨파워가 부족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기획자 두세명과 개발자 두세명과 디자이너 한명 정도가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기획자 중 조금 언어적인 센스가 있고 마케팅 책을 읽어본 사람이 마케터의 역할까지 전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장사를 잘해서 점점 조직이 불어난다면, 
체계적으로 브랜드과 서비스를 관리하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마케팅은 분명 마케팅 전문가가 담당해야할 일로 바뀔 것입니다. 


위의 예와 다르게, 
마케팅과 기획자의 할일과 의무를 처음부터 명확히 구분해 놓고, 각자의 영역에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조직된 조금은 규모가 큰 회사라면, 처음부터 기획자는 기획을 하고 마케터는 마케팅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요즘 사회에서 흔히들 말하는 '융'이 잘 이루어진 조직은 

마케터도 기획자처럼 생각할 수 있고 기획자도 마케팅 영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의 일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은, 자신의 직군이 아닌 다른 분야에일도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개발이냐 디자인이냐 기획이냐 마케팅이냐 

나는 마케팅이기 때문에 기획을 바꿀 수 없어, 나는 디자이너니까 개발에 관여할 수 없어. 혹은 그럴 필요가 없어.그럴 자신이 없어..

라는 단순한 사고 자체는 의미가 점점 옅어집니다. 각 직군이 의미하는 바와, 그 미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 와중에 나의 특화된 롤에 전문성이 있다면, 분명히 다른 직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케터가 기획을 하고 기획자가 마케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케터는 마케팅을 하고 기획자는 기획을 합니다.

하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발전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나는 마케팅은 다른 직무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부서와 직군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는 트렌드에 매우 반대하는 사람이다. 



약은 약사에게-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이야기다.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테이블에 수십명 모아놓고 떠들게 하면,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한마디씩 보태면서 결국 아이디어는 신나게 산으로 간다. 그리고 2-3시간 동안 얼굴 벌개져가면서 난상토론을 하고 난 후에 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결국 어떤 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 아무 일 도 해결되어있지 않은 놀라운 체험을 한다. 진짜 브레인 스토밍은 아무말 대잔치가 아니다. 아젠다를 정해놓고 자기가 생각하는 논리를 설득해나가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일을 할 때는 '분담' 만큼 효율적인게 없다. 이 분담의 기준은 절대적으로 '전문성'에 기반하는 것이고, 그 전문성의 이름표를 붙여 놓은게 '직군'이자 '직함'이다. 업무는 해당하는 직군에서 책임지고, 그 책임감은 직함이 높을 수록 무거워진다. 


작은 회사일수록 일의 경계는 분명해야 하고, 책임자는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을 시스템 (체계) 라고 부른다.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는 파악이 어렵고, 파악되지 않으면 관리가 어렵고, 관리가 안되면 개선을 할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직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일의 경계를 무너뜨려라. 

기획자도 마케팅 의견을 낼 수 있고, 마케터도 개발 언어를 배울 수 있어야 하고, 개발자도 마케팅 서적을 뒤적거릴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아무도 생각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탄생시킬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일은 함께 해도, 책임은 책임 부서에서 나눠가져야 한다. 그래야 일이 전문적으로, 빨리 굴러간다. 



나는 여전히 마케팅은 마케터가 제일 잘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어떤 마케터를 뽑고 훈련시키느냐이지, 마케팅 잘하는 기획자나 개발자를 뽑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개발잘하는 마케터보다는 마케팅 잘하는 마케터가 좋다. 하지만 마케터는 천성적으로 다양한 직군과 어우러지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융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여야 한다. 

반대로 마케팅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직군의 사람들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마케팅의 기본을 가르치고 전파할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배워가면서 일하는 태도만큼 성과 내기 쉬운 것도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살아간다. 그 욕구를 채워줘가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를 존경할 때, 우리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