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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gon Huh Sep 26. 2017

Blade Runner 5 Connections

튜링부터 보위까지, 블레이드 러너 2049 개봉을 앞둔 워밍업 

같은 해 개봉한 ET에 발린 불운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 2049 개봉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새 버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죠. 가슴 한 켠에서는 1982 버전의 컬트 팬이라 원작의 감동을 훼손시킬까 두려운 점도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래는 2019년 11월이에요. 내년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진화된 안드로이드 NEXUS 6의 제작 연도가 2016년이니까 이미 2년 전에 나왔어야 하네요.  지금의 우리에겐 에코와 웨이브 같은 녀석들이 있네요. 하하 


제작 당시만 해도 리들리 스콧은 이미 에일리언(1980)으로 대박을 낸 상태였고, 해리슨 포드도 스타워즈 개봉 이후에 다음 작품 준비 중이었습니다. 한창 주가 높을 때죠. 천재 작곡가 반젤리스도 이미 분노의 전차(1981)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때였죠. 그 밖에 룻거 하우어, 숀 영, 다릴 한나까지 캐스팅도 완벽했습니다. 그런데도 망했으니.. 영화의 흥행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예쁘잖아요 레이첼 (Sean Young 23세 때)  

비록 개봉 당시에는 ET에 발려서 망했지만.. 영화 팬들의 가슴, 특히 제 가슴속에서는 영원한 명작으로 남아있죠. ET보다 오히려 더 컬트 무비가 되었고 2탄까지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
혹시 1982 버전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이참에  같이 입덕 하십시다. 불끈. 




1. 앨런 튜링과  블레이드 러너 

 오프닝 시퀀스에 리플리컨트를 가려내는 test를 실행하는데, 이게 1950년에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고안한 'imitation game'에서 착안했습니다. 이 테스트는 튜링이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겠다고 만든 테스트죠.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었는데 제목이 바로 이미테이션 게임이었습니다. 정작 영화는 튜링의 전쟁 영웅으로서의 한 면모와 뒤이어 그의 쓸쓸한 몰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금지하던 시절에 태어나는 바람에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치욕감에 독 묻은 사과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애플의 한 입 깨문 사과 로고가 튜링을 기리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야기가 좀 샜는데, 정작 튜링 테스트를 적극 활용한 게 튜링 일대기를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2015)이 아니고 블레이드 러너(1982)라는 점이 인상적이죠? 튜링 테스트는 1950년에 그의 논문 'Computer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앨런의 질문은 이렇죠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럼 칸막이가 쳐진 방에 사람, 그리고 A, B 이렇게 두 대상이 들어가 있고 사람이 타이핑된 텍스트로만 대화해서 A, B 둘 중 누가 기계고 누가 사람인지 가려내는 Imitation game을 했을 때 만약 기계가 사람을 속인다면 기계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걸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는 육안으로는 (사살하기 전까지는) 로봇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어려운 리플리컨트를 가려내는 데 사용합니다. 


영화에서는 기계가 답 못할 질문을 던지고 홍채의 변화를 살피는 테스트에요. 



2. 샤이닝과 블레이드 러너 혹은 큐브릭의 재활용 

또 한편의 제 인생 영화이기도 한 스탠리 큐브릭의  The Shining(1980)과도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사소하게는.. 리플리컨트의 창시자 극 중 타이렐 역의 Joe Turkel 이 샤이닝에서 바텐더로 등장하는 점이 있고요, 결정적으로 리마스터 버전의 엔딩에 사용된 컷 중 자동차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컷이 샤이닝의 오프닝 용으로 찍어둔 컷들에서 재활용되었습니다. 
저도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어요.
사실 리들리 스콧 팬을 자처한 스탠리 큐브릭이 기꺼이 쓰라고 내줬다고 하네요. 큐브릭 옹이 과하게 장면 많이 찍어놓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니까요 (제작사에서  물쓰듯 찍어놓은 필름 몇 개 갔다 쓰라고 역정을 냈을지도 ^^;;) 

사실 이 엔딩을 포함해서, 영화 편집을 가지고 잡음이 많았습니다. 데커드의 '내레이션' 이 문제의 핵심인데 일단 해리슨 포드가 이 버전을 너무 하기 싫어서 녹음실에서 난동을 피운 걸로 유명하고요, 제작사에서는 이 내레이션 없이는 사람들이 당최 이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완강했다고 하네요. 중간에 리들리 스콧이 너무 연출 가지고 질질 끌고 제작비 초과 집행한다고 한번 해고당하고 재입사하는 과정도 있었으니 얼마나 마찰이 심했을지 알 수 있죠. 그런 상황에서 추가 촬영 없이 '해피 엔딩'을 만들기 위해 스탠리 큐브 링이 마구잡이로 찍어놓은 몇 컷을 공짜로 가져다가 쓴 겁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리들리 스콧도 그나마 '내가 큐브릭 형아 거니까 참는다' 정도이지 않았을까요. ^^;; 

내로라하는 큐브릭 빠인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추가된 이 엔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동료 형사인 개프가 데커드의 문 앞에 껌종이로 만든 유니콘을 놓고 가버리는 엔딩으로 끝나도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영화 초반부터 개프는 데커드를 만날 때마다 유니콘 종이접기를 놓으면서 '야 인마 너도 리플리컨트야 ㅋ'라는 암시를 하지만 데커드는 눈치를 못 채 지오.  관객들도 눈치를 못 채는 경우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지금 안 사람 손
그래서 이 급조된 엔딩에서 데커드의 아리송한 대사가 양념으로 덧칠됩니다. '개프는 레이철이 4년만 살 줄 알고 (불쌍해서) 살려줬겠지만 그것보다 오래 살았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몰랐다' 이 말은 레이철뿐 아니라 데커드도 죽기는커녕 노화도 오지 않고 레이철이랑 같이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나도 리플리컨트다. ' 하지 왜.. 이런 애매한 엔딩을 '해피엔딩'이랍시고 넣고 난리야... 그냥 처음 디렉터스 컷으로 갔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감독 버전은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흑흐그흐ㅡ드그ㅡㅎ흑흑흑흑 


두 영화 모두 보신 분도 잡아내긴 매우 어렵 ^^;; 




3. 뫼비우스 그리고 타임 마스터 

프랑스 출신의 만화가 Moebius를 아시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Comic Creator입니다. 저는 뫼비우스를 르네 랄루 영화에서 처음 알았어요. 르네 랄루의 <타임마스터(1982)>가 바로 뫼비우스가 캐릭터 디자인과 아트 디렉팅을 총괄한 작품입니다. 르네 랄루의 이른바 출세작인 <판타스틱 플래닛(1973)>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성숙한 아트워크를 보여주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와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많은 비교를 당하게 됩니다. 실제로 하야오와 뫼비우스는 우정을 나눈 친구기도 하고 서로의 작품을 존경했다고 해요. 실제로 뫼비우스 딸 이름이 나우시카랍니다. ㅎㅎ  (* 아직 타임마스터와 판타스틱 플래닛 안 본 분들은 얼른 가서 보세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실 겁니다.)

근데 이 뫼비우스가 블레이드 러너랑 무슨 상관이냐면요,
사실 리들리 스콧은 처음부터 아트워크를 Alien(1980) 때 이미 호흡을 맞춘 '뫼비우스'에게 맡길 확고한 마음을 먹었었답니다. (네, 뫼비우스가 에일리언을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뫼비우스 할아버지가 르네 랄루랑 '타임 마스터'를 하기로 계약해서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합니다. 아마도 영어로 일하기보다는 불어로 일하기가 편해서 그랬을 것 같다는 의심을 해봅니다 허허. 그래서 타임마스터와 블레이드 러너 두 작품 모두 1982년도 탄 생작이죠. 결론 적으로 둘 다 망했고요^^ 
나중에 뫼비우스가 그때 블레이드 러너 거절 한 걸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해요. 

훗날 같은 프랑스 출신 감독인 뤽 베송 감독의 <제 5 원소(1997)>에서 뫼비우스 할아버지가 아껴뒀던 아트워크 폭발시킵니다. 그렇다고 블레이드 러너의 코스튬이나 아트가 후지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지만 뫼비우스의 팬으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연결고리예요. 아쉬운 마음은 제 5 원소로 달래 봅니다. 근데 이건 또 아트는 좋은데 음악이 후지다는. (미안해요 에릭 세라.. 당신은 딱 그랑블루 ost까지만이었어요 ㅜㅜ )

뫼비우스가 제5원소에서 그리는 미래는 살짝 더 로맨틱 합니다





4. 필립 딕 K 원작의 형제 영화들


아무튼 이 영화는 감정을 가져서 안되고 인간의 편의와 쾌락을 위해서만 복무해야 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죽음 앞에 투쟁을 벌이는 영화입니다. 필립 딕 K의 원제는 '안드로이드는 전자 양 꿈을 꾸는가?'인데요, 원작에서는 리플리컨트가 아니라 '안드로이드'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제작사에서 '안드로이드'가 너무 만화적이라서 유치하게 생각될까 봐 좀 더 있어 보이게 '리플리컨트 (복제품)'으로 바꿨다네요. 구글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나

필립 딕 K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은 많습니다만 필립이 좋아했던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였다고 하네요. 왜냐면 유일하게 그가 살아 있을 때 눈으로 본 작품이거든요. ^^;; 아마 다른 걸 봤으면 다른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지만.. ㅎㅎ 그가 개봉 2주 전에 안타깝게 사망하는데 죽기 전에 오프닝 20분은 보았다고 해요. 그리고 리들리 스콧의 스크린플레이와 아트워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답니다. 자기 머릿속에 있던 것과 일치하는 재현이라고. 그 후로도 필립 원작의 대작들이 탄생합니다만 제가 꼽는 Top 3는 아래와 같습니다. 쟁쟁하죠? ^^ 

* Blade Runner (1982,2018) - 리들리 스콧

* Total Recall (1990,2012) - 풀 버호벤

* Minority Report (2002) -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리메이크되면 트리플 액셀 달성하는 건데 아쉽네요,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5. Don Percival와 Space Oddity

https://www.youtube.com/watch?v=IFTRLijNajg


세상엔 좋은 영화도 많고 좋은 영화 음악도 많지만 저에게 딱 한 장의 음반, 그리고 딱 한 곡의 넘버를 고르라고 하면 Vangelis가 작곡한 블레이드 러너의 오리지널 OST 중에서 Don Percival이 부른 One more Kiss, dear를 고르겠어요. 아니 요즘에 '파파미'라고 해서 파도 파도 미담이라는 등의 용어가 유행인데 블레이드 러너야 말로 파파미 아닐까 싶습니다. 이 걸출한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 여러분 모르시죠?

Don Percival은 영국 팝계와 재즈 음반 계의 숨겨진 공로자입니다. Don이 필립스 레코드에서 처음 발굴한 뮤지션이 세상에 David Bowie였어요, 그리고 보위가 좀 빌빌 거릴 때 Don이 리코딩을 주도했던 곡이 Space Oddity입니다. 아폴로 11호 착륙 5일 전에 릴리즈 된 이 곡은 보위를 그야말로 월드 클래스 스타로 만들어 주죠. 그 뒤에 Don Percival이 있었고, 그때는 이 노래 녹음도 하기 전입니다. ( 당시에 보위가 힘들어할 때라서 Don이 보위 집에 찾아가서, 만약 이 곡 히트 못 치면 나 음악계에서 은퇴한다고 안심시켰다네요. 목소리만큼이나 마음씨도 좋은 사람인 듯) 


원래 이 곡은 Don이 Guide singing 만 해줬는데 반젤리스가 듣고서 너무 감미롭다며 그냥 오리지널 트랙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Don은 80년대에 다녔던 Phonogram이 Polydor에 인수합병되면서 회사를 떠나는데 이때 합병으로 우리가 다 아는 Polygram이 탄생하게 됩니다. 좀 더 다니시지 ^^;;




써놓고 보니 몇 개 안되네요, 영화 시나리오나 원작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이미 차고 넘칠 거라고 생각하고, 개봉하면 원작에 대한 재조명도 쏟아질 거예요. 그래도 제가 정리한 connection들은 다소 minor 한 것들이라 어지간한 덕후들도 잘 몰랐던 사실들이라고 혼자 자부해봅니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 처음 본 게 16살이었거든요. 불법 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학교 영화 동아리 선배의 집에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교복 입고 모여서 봤습니다.  그 날의 먹먹한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저에게는 처음으로 영화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예술이구나를 알려준 작품입니다. 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 영화 때문에 지금까지도 AI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처음 이 영화 본 지 딱 20년 되는 해에 2탄이 개봉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그때만큼 큰 감동을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줄 수 있을지, 드뇌 빌 베브를 한 번 믿어 보렵니다.


+) 한스 짐머와 요하네스 요한슨도 존경하지만 반젤리스에게 OST 작업이 돌아가지 않은 건 여전히 분합니다 ^^;; 하긴 리들리 스콧도 아직 살아있는데 직접 연출 안 했으니까요, 세대교체라고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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