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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May 23. 2021

27 삶과 다름에 대한 호기심

-애정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

원래 사회생활 첫 시작 후 TV 없이 몇 년을 살았었다. TV가 없어도,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고 요리를 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중요한 사실은, TV가 없다고 해서 전혀 TV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시간 날 때 좋아하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컴퓨터 유료결재로 보거나, 인터넷으로 각종 연예뉴스 기사나 홍보 동영상을 접하면 주된 내용은 대부분 파악이 가능했다.


그런데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자, 동생이 쓰던  컴퓨터 겸용 TV를 부모님이 서울 집에 가져다주시면서 얼결에 TV를 들이게 되었다. 나아가, TV 없으면 세상과 단절된 채 살게 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시고, 일일연속극과 주말연속극의 열혈 시청자이시기도 한 연세 지긋하신 최여사님(엄마)은 'TV 없는 집은 너무나 적막강산이다. 비용을 댈 테니 제발, 제발 TV를 사라. 동생이 준 TV는 너무 작아서 눈이 나빠진다' 등등의 주장으로 꽤 오랫동안 큰 딸을 끈질기게 설득하셨다. 로스쿨 때부터 고독사 뉴스를 접하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혼자 살고 있는 딸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며 연락을 해오셨던 엄마다. 아무래도 혼자 사는 딸이 TV가 없어 긴급 재난상황이나 뉴스를 듣지 못해 혹여나 불이익이나 피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것 같았다(아이고, 어머니~). 딸은 버티다 짐짓 못 이기는 척 엄마가 하사하신 돈으로 TV를 사기에 이르렀다. 시중에 생산되는 벽걸이용 TV  제품 중 작은 사이즈(43인치)였지만 나에게는 차고 넘쳤다.  


TV를 들인 후, 생겨난 변화. 아무래도 리모컨에 절로 손이 가게 되고, TV를 예전보다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챙겨보게 되는 몇몇 프로그램이 생기게 되었으니, 바로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N주년>, <법의 날 특집>, <은밀한 이중생활>, <한 줄로 설명되는>, <시간의 마술사들> 등과 같이 매 회차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해당 주제와 관련이 있거나 또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기발, 요상하게 관련성 있는 일반 시민 3~4명을 섭외하여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국민 MC 유재석과 보조 MC 조세호가 단독 출연자, '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하면서 '살아왔던 인생 경험과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진~하게 풀어놓게 만드는데, 그들의 지나온 삶의 궤적은 매우 흥미롭고 여러 다양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하고, 그 안에서 깨닫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또한, 나의 타자에 대한 호기심을 오감만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 '외국',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산다.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한국 여행을 준비하며 보여주는 현지 생활도 흥미롭고, 한국을 처음 방문, 여행하거나(시즌 1) 한국에서 일하고 즐기는(시즌2, 코로나의 영향)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인류애적인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보이는 독특하면서도 낯선 반응들이 흥미롭다. 나에겐 재미맛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신선하게 받아들였던 몇몇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인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파는 치즈(맛) 아이스크림을 다들 신기해했던 것. 치즈는 치즈고,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라며, 우리로 따지면 된장(맛) 또는 김치(맛) 아이스크림 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 둘째, 한국 여행 중 삼겹살 등 고기를 먹을 때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쌈장을 좋아하자, 이탈리아인 알베르토가 설명하길, 이탈리아 고향 친구에게 선물하면 누구나 예외 없이 좋아하는 것이 한국의 쌈장 소스라며 '마성의 소스'라 표현했던 것. 셋째, 일본과 중국사람들은 먹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만 즐겨먹는다는 깻잎을 고기 먹을 때나 장아찌 등으로 즐기며 그 독특한 향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꽤나 많았던 것.


넷째, 최근 편에서 돈가스를 포크와 나이프로 썰 때 영국식과 미국식이 확연히 달랐던 것. 영국식 썰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쓰는 방식, 돈가스를 왼손 포크로 누르고 포크 바깥으로 오른손으로 칼로 써는 방식이었는데, 미국식 썰기는 왼손으로 포크로 돈가스 가운데를 수직으로 누른 다음 오른손으로 포크 뾰족한 부분 사이사이 좁은 공간으로 칼을 넣어 돈가스를 써는 방식이었다. 영국인 1명이 3명의 미국인이 그렇게 동시적으로 고기를 써는 것을 보고 '그렇게 써는 것을 처음 본다'며 매우 신기해했는데, 미국인들은 모두 '당연한 것을 뭘 그리 신기하게 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나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섯째, 유럽에는 사실 스프 외 국물 음식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순댓국이나 설렁탕 같은 국물 음식을 매우 좋아하며 심지어 해장음식으로 즐겨찾는 마니아 외국인들도 꽤나 많다는 것. 여섯째, 삼성전자에 다니는 MIT 공대를 나온 미국인 조나단의 블루맨으로서의 애사심이 대단한 것. 그는 최근 코리언 쓰리 픽스 챌린지(하루 24시간 안에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을 등산하는 도전)에 참여했는데, 신체상의 한계로 중도에 포기할 뻔하였으나 끝까지 노력하여 시간 내 완주했다. 자신의 한계(인간의 한계)를 맞닥뜨린 순간에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인터뷰했는데, 가족의 응원을 떠올렸던 것은 물론, 자신이 포기하게 되면 삼성보다 엘지가 돋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아, 재미맛집).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 인식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내가 알고 있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내 닫힌 인식과 사고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내가 위 두 프로그램을 애정 하는 이유다. 최여사님, 선물해 주신 TV 앞으로도 쭉~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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