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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Jun 06. 2021

29 넌 왜 항상 뒷자리에 타니?

-공부만 한 아이는 커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됩니다

주말 아침 7시쯤 지하철을 타고 운동센터로 가는 길이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전공서적인 듯한 빽빽하고 두꺼운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도 출력물을 손에 들고 뭔가를 암기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6월 초니까 아마도 대학교 기말고사 기간이 아닌가 한다.


 역시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험, 사법시험 및 변호사시험 등을 준비하며 얼마나 다양한 교통수단에서 책을 보았던가 생각했다(승용차, 버스, 지하철, 비행기).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저런 절박한 시기를 지나 지금은 지하철에서 여유롭게 소설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그러고는 20년도 더 된, 대학교 1학년 초 아빠와의 일화가 생각났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경남 진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됐다. 보통 4월 중간고사, 6월 기말고사 끝나고 나면 한 번씩 고향 진주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공항이나 버스터미널로 아빠가 항상 마중을 나오셨다. 아빠는 운전석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조수석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된 뒤, 또다시 뒷자리 차문을 열던 어느 날, 아빠가 조금 불편한 기색으로 말씀하셨다.

"넌 왜 항상 뒷자리에 타니? 앞에 타라."


순간 당황했고, 내가 그동안 잘못 행동해왔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 그래서 우물쭈물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이런저런 변명을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지금과 같은 카시트 관련 법령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항상 뒷자리에 태웠고, 좀 더 커서 가족 나들이를 가게 될 때면 5인 가족(아빠, 엄마, 오빠, 나, 여동생) 중 덩치가 유난히 크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빠가 항상 조수석에, 엄마랑 나, 여동생이 항상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에 늦어 아빠가 태워주거나, 시험기간에 특별히 데려다주실 때 늘 뒷자리 상석에 앉아 초집중해서 책을 보며 등하교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다. 그 습관이 몸에 배어 '내 자리는 조수석 뒷자리'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그래서 아빠와 단 둘이 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뒷자리 상석에 늘 앉았던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웃픈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운전자가 나보다 높은 사람일 때는 아랫사람은 조수석에 타야 한다는 사실을. 소위 거창하게 '의전'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사회 속의 예의나 매너로 시작되었을 것에 대해 처음 생경하게 알게 된 날이었다.


사실, 하고 싶었던 다른 얘기가 더 있다. 어릴 때부터 차만 타면 늘 뒷자리에서 책만 보느라, 지나치는 차창 밖 풍경들과 사람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배우나 소설가가 어쩜 그렇게 사람들과 세상을 탁월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토크쇼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얼마나 유심히 관찰하기를 좋아했는지, 그러면서 자연과 인간에 대 깊이 있는 시선과 통찰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돌이켜 보니, 진짜 배움은 늘 창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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