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09일째
10월 10일(월) 한파가 곧 올 것 같은 날씨
오늘 둘째의 백일 식사가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과 오빠네 식구와 밥을 먹기로 한 날이다. 백일상도 구에서 무료 대여해주길래 대여해뒀다. 오늘도 역시 에너지 쓰고 마음 쓰게 하는 건 첫째다. 동생 백일 식사한다니까 자꾸 넘버블럭스의 101을 보여달란다. 아마도 '백일'을 숫자 '101'로 이해한 게 아닌가 싶다. 어제 잠들기 전에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해줬더니 공주가 '백 살'이 냔다. 이 아이의 머릿속은 숫자로 가득하다.
좌우지간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백일상을 차리고 가족들을 맞이했다. 모두들 신이 나있다. 우리 첫째만 세상 산만하다. 제대로 안거나 서 있는 게 단 1초도 없는 것 같다. 하아...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힘을 내야 한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가족들 앞에서 첫째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여러 번 다짐했다. 일식 정식 코스로 먹었는데 양도 적당하고 구성도 훌륭했다. 금반지와 용돈을 두둑이 받은 만큼 식사대접이 중요한데 그래도 면이 선다.
첫째는 오늘도 미운 다섯 살이다. 아가 침 흘린다고 침 닦아줬더니 자기도 침 흘렸다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갑자기 중학교에 가더니 공부 열심히 하는 사촌 형, 누나와 귀여움을 온몸에 장착한 100일 동생 사이에 끼어 눈총 받을 짓만 하루 종일 하고 있으니 누구 하나 첫째에게 관심이나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관심받고 싶어서인지 점점 더 이상해진다. 그나마 친할아버지가 계속해서 잘 먹으라고 챙겨주시고 말 걸어주시니 다행이다. 나는 얘 먹이느라 회가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남편 역시 둘째 재우느라 같은 입장이다. 그래도 순둥이 둘째가 밥 먹는 시간 동안은 잘 자주어서 일식 코스를 다 먹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자, 이제 사진 촬영 시간이다. 우리 첫째는 여전히 제 발로 서지 못하는 아기인 것 마냥 아빠와 할아버지 품에 안겨버린다. 모두가 한껏 포즈를 취한다. 아기는 어리둥절이다. 얘는 늘 느끼지만 사진 찍는 게 엄청 수월하다. 우선 본인에게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고 말을 걸어주면 만사 오케이다. 오빠에게 늘 관심을 빼앗기다 보니 그런 건가? 본래 성격인가? 사람 많은 거 좋아하고 쳐다봐주면 싱글벙글이다.
두 시간 여동 안 식사와 촬영을 휘리릭 마치고 (정말 체감 상 휘리릭이다) 집에 돌아왔다. 여전히 보채는 첫째에게 괜스레 짜증이 난다. 둘째와 남편은 깊이 잠들었다. 첫째와 복닥거리다가 또 한바탕 화를 냈다. 아이에게 화를 내다 내 감정에 격해져 눈물이 났다. 뒤이은 저녁 시간에는 첫째가 의자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엄지발가락을 찧어 또 울었다. 울보 엄마다. 찰랑찰랑한 인내심의 잔이 자주 넘쳐버린다. 아이도 위기의식을 느끼는지 엄마 눈치를 살살 본다. 전혀 좋을 것 같지 않은데 엄마가 힘들다는 걸 아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내 감정을 백 프로 숨기고 성숙한 어른, 완벽한 엄마가 될 수만은 없다. 능력 상 불가능이다.
그래도 9시에 둘째 재우고, 10시 전에 첫째 재우기에 성공했다. 둘째를 재울 때도 "엄마가 많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첫째를 재울 때는 "엄마가 널 혼낼 때도 늘 너를 사랑해. 내일 더 행복하자"라고 말했다. 두 아이 엄마가 된 지 어언 백일이다. 그간 나는 얼마나 좋은 엄마였을까? 잘 모르겠다. 되게 별로인 엄마인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한마디가 오늘 듣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해 준 사람은 시어머님이 유일했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인정하면 됐지. 수고했다,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