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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와우 Sep 15. 2023

우울하지만 난 성실하게 사는 년이에요

'어울리지 않음'. 그것이 더욱 정확한 설명이 되곤 한다.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드라마 '더 글로리' 강현남역의 대사다. 얼굴에 붉은 상처가 있지만 씨익 웃는 강현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사였다. 이 대사가 그 어떤 강현남의 대사 중 나에게 가장 확 와닿았던 이유는 저 대사가 바로 강현남 당시의 존재를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매 맞음'과 '명랑함'은 가볍게 듣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면 매 맞는 사람을 떠올리면 움츠러들어있거나 울고 있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확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특성들의 합’이 사람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순과 이질적임, 어울리지 않음. 그 특성을 빼고는 인간의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없다.

     

어릴 땐 악당과 영웅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나누어 사람을 보았고 그 단순함이 그것이 어느 정도 나이까진 먹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경험을 겪다 보니 저러한 것은 정해져 있다기보단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주 밝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아주 슬픈 부분이 있고, 아주 슬퍼 보이는 사람도 웃음이 터질 수 있는 거였다. ‘이러이러하니 그럴 것이다’ 생각하는 건 주어진 시간 안에서 빠른 속도로 효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도 주지만, 그것이 맞지 않는 경우 얼마나 헛다리를 짚는 생각으로 삶을 살게 되는가. 문득 무서워졌다.  

    

편견이란 부슬비처럼 천천히

그리고 생각보다 더 깊숙이 스며든다.     

문득 헛다리 짚는 생각이 무서워진 순간 내 안에 있는 여러 생각을 돌아봤다.


남자니까, 여자니까, 어리니까, 나이 들었으니까, 장애가 있으니까, 슬프니까, 종교가 있으니까, 게으르니까,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으니까, 돈이 많으니까, 아이가 있으니까, 피해자니까, 고학력이니까... 그래서? 거의 본능과 가까운 속도로 뒤따라오는 생각이 너무나 많았다. 만약 내 머릿속에서 이어진 생각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나는 10대 후반 ~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우울함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현실에 성실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삶의 무의미에 괴로워 몸부림쳤지만 학교, 일 등 주어진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열심히 하기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모습이 스스로를 이상하고 답답하다고 느끼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우울하면 축 처진 모습이어야 해, 무기력해야 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성실한 건 쾌활함과 긍정의 영역에만 속한다는 것처럼.

       

이런 생각을 한 뒤로는 종종 ‘~해서’라기보단 ‘~지만’으로 바꿔 생각하려 노력한다. 우울하지만 분명 활달한 부분이 있고, 미워하지만 사랑하기도 하고, 기쁘지만 먹먹하기도 하고... 왠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특성의 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많은 분노와 억울함이 많이 가라앉았다.


때로는 앞뒤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장 정확한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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