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은 이해하지 말고 분노해야할 명백한 차별이다.
인종 (人種)
[명사] 1. 사람의 씨. 2. 인류를 지역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구분한 종류.
사전적 의미의 인종은 이렇다.
노키즈존이라는 신종 인종차별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작년 여름
청담동에서 친구들이랑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고
우리집서 가까운 성수동에도 지점이 있다는 얘기에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엄마를 모시고 5살짜리 딸과 함께 갔다.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서울숲에서 산책도 할 생각이었다.
들어섰는데
노키즈존이라는 말에 얼떨떨했다.
그냥 동네 카페가 왜 노키즈존이어야 한다는 거지?
- 그러면 커피를 사서 나갈께요.
- 아이는 나가서 기다려야 합니다.
- 다섯살짜리를 혼자 찻길에서 기다리게 하라는 말인가요?
- 죄송합니다.
결국 그냥 나왔지만
기분이 너무 불편했다.
거절당해서 서운한것에서 멈추지 않고
내내 노키즈존이라는 컨셉에 대해 생각했다.
내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특정 비지니스를 저격하는 것 같아
금새 포스팅을 지웠지만
그 사이 눈에 띄는 의견은
비지니스적 선택 이라는 얘기,
본인은 맘충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의 눈에는 맘충이다!
라며 내가 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문제아의 어미이며
느희같은 것들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라는
공격을 해오는 사람조차 있었다.
네 커피마실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왜 내 개인 재산권이 위협받아야 하냐며
다른데 많지 않냐고,
키즈카페라든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라고
그러면 과연 될 일을 왜 나는 고민하는걸까?
노키즈존이 나를 괴롭게 하는 이유는
이것이 너무나도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차별
그리고 아이를 동반하는 가족에 대한 차별
이 너무나도 명백한 차별을
다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애를 두고 가면 되지 않냐,
애가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냐는 말은
나에게 주어진 차별을 받아들일 것이지
왜 차별에 순응하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다.
올해는 딸을 데리고 전시회에 갔다가
또 노키즈존이라 불리우는 차별을 당했다.
방학 첫날 한국에 온 김에
전시회도 보고 예쁜 책방에도 데려가고
좋아하는 파스타도 사주려고
나온 날 첫 계획지에서 맞닥뜨린 거절.
왜 아이를 데리고 전시장에 들어갈 수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림을 만지거나 뛰어다닐까봐 라고 하지만
내 아이는 걷기 시작할때부터
전시를 보러 다녔다.
뉴욕 집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구겐하임, 쿠퍼 휴잍 뮤지엄이 가까워서
유모차를 밀고 호크니 특별전을 보거나
비를 피하러 쿠사마 야요이전을 보러 가기도 한다.
단 한번도 그림을 만지거나
뛰어다닌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우리는 작품 구경을 하러 온거고
만져서는 안된다고 수차례 얘기를 했고
아이는 그것을 지켰다.
그리고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이런 기회를
왜 아이들에게서 빼앗아야 하는걸까?
노키즈존에 대한 얘기가 오갈때마다
꼭 나오는 말은
그렇지 않은 애들도 많고 그냥 내비두니까 문제다,
난리치고 아무거나 만지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는 엄마들 때문에
노키즈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얘기다.
그럼 그런 사람들을 골라내거나
내쫓으면 안될까?
그랬더니 구분이 안되니까 그런것이고
들여보냈다가 내보내는게 힘들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모두 잠정적 파괴자로 취급하는
노키즈존이라는 차별로
해결해낼일이 아니라.
흑인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범죄율이 높다고 해서
흑인을 가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거나
특별 검문을 더 하면 인종차별이다.
모든 흑인이 그런것은 아니니까.
단순히 여자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책정하고서
여자들은 생리휴가며 이 핑계 저 핑계로
일을 덜해서 그런거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차별이다.
모든 여자들이 그런것은 아니니까.
그저 남자기 때문에 웃음을 지어보내거나
친근하게 대한것 정도로 확대해석하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한다면
그것 역시 성차별이다.
모든 남자들이 그런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모든 아이가 난폭한 아이고
모든 엄마가 맘충이라고
결론을 내버린 노키즈 존에
굴복하고 말없이 따라야만 하는걸까?
그 커피숍 못가면 죽나요??
라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당연히 커피숍을 못가는 정도로
인간은 당장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별을 차별인지도 모른채
맥없이 따른다면
그것은 자주권을 가지지 못한
노예나 다름없는 삶이고
이런것들이 모인다면
속에서부터 차츰 죽어가겠지요!
커피숍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차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것 뿐이다.
부모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다들 "근데 이해는 해요.."
라고 답을 한다.
차별을 이해 하지말고
분노하고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부시고 폐를 끼치는
아이의 부모라면
통제하고 교육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
부모 외의 사회 구성인들도
무해한 불편함이나
실수 정도는 너그러이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와 고백하지만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새끼앞에서는 턱빠지게 넋이라도 있고 없고
아주 그냥 홀딱 반해있지만
그건 그냥 나의 '그녀'를 향한 사랑일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을 디게 좋아하거나
그들의 세상을 매우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엄마가 되면서 배운것은
내가 싫던 좋던 아이들은 소중하고
잘 가르치고 잘 지켜주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며 희망이라는 것이다.
내가 엄마로 또 사회 구성원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소중히 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미래에 현재 내 자리를 메꿀
젊은이가 없다면
그때의 나의 현재는 무엇이 될것인가?
그래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것이
가정에만 멈추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제도와 사회가 책임을 나누고
또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분리하고 차별하여
당장의 편리함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