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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y 22. 2018

내가 군대 가기 싫은 이유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

 지난 3월 29일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높으신 분들이 신체검사라는 어감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병역판정검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나는 신체검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병력 자원으로서의 신체에만 집중하는 검사니 말이다. 검사 내내 나는 인격이 아니라 병역 자원으로서만 대우받았다. 검사하는 사람들은 반말이었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세탁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모를 꼬질꼬질한 검시복으로 갈아입는 순간부터 거기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은 사라졌다. 내 눈에는 그저 때가 탄 주황색 검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만 보였다. 본격적인 집단의 일부로서의 체험은 아니었지만 개인성이 말살되는 그 순간 나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검사 결과는 2급 현역 입영 대상이다.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때는 고등학교 때다. 나는 고등학교 단체생활도 싫어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에 간다는 것은 끔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고, 군대만큼이나 폐쇄적인 감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고심을 했다. 또 복역 후 평생 따라다닐 전과자라는 꼬리표도 걱정이다. 이 고민은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대입이나 대학에서의 적응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잊고 살았다. 그러나 최근 받은 신체검사에서 느낀 모멸감과 분노, 무기력함은 이 고민을 다시 상기시켰다. 아직 확실한 결정을 하지 않았지만 이 글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만약 병역거부를 한다면 이와 관련된 재판이나 설명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종교적 병역거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역거부가 그렇듯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유는 정치적 신념 때문이다. 나는 아나키스트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반권위주의자다. 아나키즘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 권력과 체제가 만들어 내는 억압과 차별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권력과 체제가 만드는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차별에 반대한다. 군대는 권력과 체제가 만들어내는 억압과 차별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군대는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고 교육하는 집단이다. 군대의 존재 이유는 살인과 전쟁이다. 군대가 이 폭력을 밖으로 향하는 것이 전쟁과 학살이다. 이 폭력성은 군대 내부에도 존재한다. 군대의 폭력의 양과 질은 국가가 거대해지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끊임없이 늘어왔다. 이 거대화된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군대는 개개인의 군인에게 통일성을 강조하게 된다. 군인 개개인이 모여 군대 폭력의 총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은 개성이나 인격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폭력을 이루는, 상명하복을 충실히 따르는, 순종적인 부품으로써만 작동해야 한다. 이는 단지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훈련이나 전시 상황에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에서 훈련이나 전시 상황을 제외한 일상에서도 이 순종성과 부품성을 유지해야 한다. 각종 가혹행위와 성폭력 등의 낮은 계급의 군인을 향한 상부의 폭력은 군인에게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병력 자원으로서 순종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격으로서 대우받고 싶을 뿐이다.


무수히 많은 개개인의 군인이 모여 만든 각잡힌 모습. 나치 전당대회.


 또한 모든 권력이 그렇듯 군대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을 만든다. 권력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을 만드는 이유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다수에게 체제의 억압에서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그 대상들에게 표출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다수와 소수의 위계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자기 검열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특히 군대는 직접적이 폭력을 다루는 집단으로서 이와 같은 것들이 특히 심하다. 여성부터,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혐오와 차별의 온상인 곳이다. 일례로 작년 3월에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아 군에서 불법적으로 동성애자 색출을 시도했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수사과정에서도 영장 없는 증거 수집이나, 외부에 발설할 시 불이익을 받는다는 협박 등등이 있었다. 또 언제나 그렇듯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나아가 그런 혐오와 차별을 배우고 실행할까 봐 겁난다.


기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준규 육참(좌), 군 동성애자 색출 사건의 피해자 영상(우)/출처 : 오마이뉴스(좌), 닷페이스(우)


 결정적으로 나는 거대화된 국가폭력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상기했듯이 군대의 존재 이유는 전쟁과 살인이다. 나는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다. 단순히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이 억압적인 체제와 권력에 보탬이 된다는 것도 싫다. 공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억압했는지에 대한 예시는 끝이 없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공권력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왔다. 군사독재 시절의 고문은 말할 것도 없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살해당하고 경찰의 사과를 받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자. 용산에서 일어난 공권력에 의한 살인도 생각해보자. 경찰과 군대의 인권유린은 나아지지 않는다.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었던 경찰의 대공 수사, 작은 창문에 가려진 대공 분실은 아직까지 남아있고, 대규모 통합청사까지 짓는다. 군대는 군대 내부에 사법체계를 만들었다. 군사재판은 민간에 공개되지 않고 검찰부터 판사까지 모두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폐쇄적인 군사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뻔하다. 나는 이런 폭력적인 집단의 소속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

한국군도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백린탄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경찰의 폭력에 의해 일어난 용산참사


 나는 병력 자원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우받기 위해, 혐오와 차별의 온상에 젖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공권력의 폭력에 동참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다. 병역거부에 대한 선택은 내 생에 첫 번째 선택일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자란 다음부터는 내가 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부분이 제도권 안에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것이었다. 그러나 병역거부는 내 신념에 따라 순응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다. 내 생에 첫 번째 선택이다. 나는 내가 병역거부를 할 용기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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