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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아탄 Nov 19. 2021

당신이 배달앱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쿠팡이츠와 배민, 거짓말을 하는건 누구일까

이집 후킹 맛집이네

hook
n. 고리, 걸이, (낚시) 바늘
v. 갈고리로 잠그다[걸다]


후킹은 영어단어 Hook 에서 온 말로, 우리말 낚시로 바꿔써도 의미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후킹이란 용어의 느낌이 썩 좋진 않지만 이용자들을 서비스로 끌어와야 하는 기획자로선 일상어처럼 쓰게된다. 오늘은 뭘로 후킹하지


참고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후크선장의 이름 역시 갈고리를 뜻하는 Hook이다. 다시보니 사기도 잘치게 생긴듯.

Disney의 1953년작 'Peter Pan' 에 나오는 후크선장(Captain Hook)


초장부터 후킹을 설명한 이유는 이러했다.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을 둘 다 이용하던 중

동일매장에서 동일 주소지로 배송을 하려는데

배달비가 서로 다른, 이상한 상황이 발견된 것.


처음엔 ①배달업체가 부담하는 플랫폼 수수료가 다르거나, ②배달기사가 가져가는 배달비가 달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조금 둘러보니

삐빅- 배달비 후킹의 냄새가 감지됐다.



배달비 후킹 : 무료배달인 줄 알았더니 결제할 땐 배달비가 붙는 상황



아래 사례를 살펴보자.

왼쪽은 쿠팡이츠, 오른쪽은 배달의민족 화면인데, 동일매장이지만 배달비가 다르다.

※ 두 지점은 지점명은 다르지만 동일 매장이다


2021-06 기준의 가격정책. 참고로 이 피자집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쿠팡이츠에서는 ‘무료배달’이지만, 배달의민족에는 ‘배달팁 1,000원’으로 되어있다. 이 경우 이용자 입장에선 특별히 배달의민족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면 배달비가 무료인 쿠팡이츠를 쓰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1,000원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한가지 가능성을 더 고려해봐야한다. 음식가격을 다르게 올려서 그 차액을 배송비로 보전받는 방식.


즉, '판매자가 음식값 및 배송비를 조정해 총 가격을 맞췄을 가능성'이다.

예를들면 이런 경우.

음식값 10,000 + 배송비 2,000 = 총 12,000원

음식값 9,000원 + 배송비 3,000원 = 총 12,000원

이렇게 되면 배송비가 달라도 총 지불비용은 같으므로 구매자 입장에선 어디서 주문하든 손해볼 일은 없다.



두 플랫폼에서 보이는 피자 순위가 다른 것도 하나의 관전포인트


하지만 동일한 메뉴로 가격을 비교해보니 치즈피자 23,900원, 페퍼로니피자 24,900원으로 음식값은 각각 동일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이건 쿠팡이츠의 노림수다.



왜 그럴까?


배달비 안내를 조금 자세히 뜯어보자.

쿠팡이츠는 ‘35,000원 이상 주문시에만 배달비가 무료’이다. 즉 35,000원 미만 주문할 땐 2,000원의 배달비가 추가된다.

반면 배달의민족은 최소주문금액인 '14,900원만 넘으면 1,000원의 배달비가 일괄 적용'된다.




결국 주문하는 금액의 구간에 따라 어디서 주문하는게 이익인지 갈리게 된다.

 

CASE 1 : 23,000원짜리 치즈피자 1판 주문 시

→ 배달의민족이 더 싸다

쿠팡이츠 : 23,000원 + 2,000원 = 25,000원

배달의민족 : 23,000원 + 1,000원 = 24,000원


CASE 2 : 23,000원짜리 치즈피자 2판 주문 시

→ 쿠팡이츠가 더 싸다

쿠팡이츠 : 46,000원 + 무료배송 = 46,000원

배달의민족 : 46,000원 + 1,000원 = 47,000원



그럼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겠다.

“쿠팡이츠는 그저, 더 많이 주문하는 이용자에게 배달비혜택을 제공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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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이런 당연한 결론을 내려고 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깐깐한 이용자라면 이상함을 느꼈어야 한다.

아니, 괘씸함을 느꼈어야 한다.


쿠팡이츠에선 분명 '무료배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영수증을 보니 배송비가 붙어있다.

?? 왜때문에 ??


쿠팡이츠가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무료배달의 기준을 높인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손익분기를 계산하는 모든 사업자 및 모든 기획자가 고민하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업셀링(Upselling**)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업셀링은 '이미 구매를 한 고객에게 다음구매에는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기에 처음 구매하는 이용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 객단가 : 고객 1명이 지불하는 평균 지불액
** Upselling : 구매자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마케팅전략



쿠팡이츠가 실제로는 무료배달이 아님에도 ‘무료배달’이라고 보여준 것은 전형적인 행동경제학에 기반한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고객님은 선택설계 당하셨습니다.




‘선택설계’란 전통경제학보다는 행동경제학에 기반을 두는 마케팅 개념이다.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바라보던 전통경제학 입장에선, 모든 구매자는 구매결정을 내릴 때 각자 최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것이 함정이며, 그렇게 반기를 들고 나온게 행동경제학이다. 즉, ‘인간 = 비합리적 존재’ 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비싼 명품백을 너무 사고싶어 현금영끌로 구매한 사람이 막상 그 명품백을 몇번 사용하지도 않고 옷장에 박아두는 것이 좋은 예다.

만약 이 사람이 합리적인 존재였다면, 몇번 사용하지도 않을 명품백을 무리해서 구매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 비합리적 존재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구매자는 뭔가에 낚였고’ 반대로 '판매자는 잘 설계’ 했다는 뜻이다.




다시 원래 사건(?!)으로 돌아가보면,

쿠팡이츠가 ‘무료배달’이라고 표시한 것은 ‘비합리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도적인 후킹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

첫째, 결제시점에 가서야 무료배달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더라도 다시 알아보기 귀찮으니 그냥 구매하게 된다.

둘째, 무료배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사이드메뉴를 추가로 구매하게된다.

셋째, 주문자가 이것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어쨋든 배달비는 추가수익이 된다. 배달비 개꿀

넷째, 배달비 후킹에 당한 기억이 있는 이용자는 다음부터는 배달비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앱 내 체류시간이 길어진다.



이게 바로 우리가 괘씸함을 느껴야 하는 포인트이다.

정석대로라면 ‘무료배달’ 이 아닌, ‘조건부 무료배달’, 또는 '35,000원 이상 무료배달'로 표기했어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쿠팡이츠는 [무료배달 자세히] 라고 표시함으로써 대부분의 이용자가 '무조건 무료배달'이라고 인지하게 만들었고, 서비스 입장에선 ‘무료배달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안내해야 하는 사전고지의무’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기당했다는낚였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결제과정 전체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한 주문금액에 예상치 못한 배송비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우며 알아챘다고 해도 다음번 결제에 또다시 낚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무료배달 자세히] 의 '자세히'는 애초에 클릭하고 싶도록 만들어진 UI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저 ‘자세히’를 대체 누가 얼마나 눌러보겠는가. User flow에서 한 depth만 늘어나도 트래픽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잘 아는 기획자는 ‘모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되, 그것을 상당히 불편하게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IT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다보니 이런 의사결정이 단순히 기획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UX팀이 따로 있다면 ‘이용자 경험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User flow  짰을 것이고, 법무팀도 ‘최소한의 리스크만을 가진 법무검토결과를 주었을 것이며, 저런 방식의 후킹이 ‘서비스의 이미지 해치지 않는다검토에 대해 최종의사결정권자가 OK했을 것이다. 삼박자, 아니 네박자가 맞아떨어져서 대국민 배송비 후킹에 성공한 것이다.

이걸 기획한 기획자와, 이게 가능하도록 검토해준 법무팀에 박수를 보낸다.




쿠팡이츠의 묘수가 통했다


사실 이런건 쿠팡이츠만의 사례는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온/오프라인의 모든 서비스에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후킹을 만들어내는 기획자와 이용자의 피말리는 눈치싸움이 벌어지고있다. 나는 이용자인 동시에 기획자이기도 해서 그런지 이런 낚시질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직업병인 것 같다.


가령, 비교적 최근에 터진 ‘머지포인트’ 사례만 봐도 그렇다. “200개 제휴 브랜드, 전국 7만여개 상점에서 결제 시 활용하면 무조건 20% 할인?” 상식적으로 이게 가당키나 한가. 기획자의 눈엔 이정도 스킴의 서비스는 그저 ‘폭탄돌리기’ 타입의 대국민 사기일 뿐이다.


초반에 올라타서 혜택을  봤던 이용자라면 모를까, 뒤따라 가입해 고액을 충전했던 수많은 이용자는 서비스의 농간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전문용어로 '폰지사기'라고 하던가. 쿠팡이츠의 후킹은 애교로 보일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아무튼, 머지포인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기로 하고.. 기획자가 보기에 쿠팡이츠는 서비스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을 했다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싶다.


나는 쿠팡 직원은 아니라 저 배달비 표시 정책으로 인해 얼마나 큰 이익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감히 예측하건대 동일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해본다면 ‘배달비를 표면에 드러내는 배달의민족’에 비해 최소 수십% 이상 구매전환율(또는 수십% 이상의 배달비 수익 창출효과)을 높였을거라고 본다.


그럼 배달의 민족은 왜 저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정책이 다소 보수적이어서? 배달비 표시 방법으로 장난치고 싶지 않아서? 저 방식이 주는 효과에 의심이 들어서?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배민도 이미 업데이트를 준비하고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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