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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Mar 16. 2022

한없이 가벼운

하루종일 잠을 잔다. 일어나면 또 자고 자다 깨면 또 잔다. 자다가 자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으면 그냥 눈을 감고 침대에 있는다. 그러다보면 또 잠든다. 눈을 뜨면 아침 열한시, 또 조금 있다가 눈을 뜨면 오후 두시, 다섯시, 여덜시.. 그렇게 햇빛 한 번 볼틈없이 잠을 잔다. 다시 저녁이 오면 저녁이라 자고 아침이면 아침이라 잔다. 낮은 낮이니까 잔다.


애매한 시간에 한 번쯤 일어나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한 번 먹을 때 물도 많이 마시고 밥도 많이 먹는다. 그래야 자다 깨는 일이 없다. 너무 많이 자다보면 가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다가도 꿈 속에서는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게 그치지 않는 것을 보고 아 이건 꿈이구나 한다. 


그렇지만 그것만 빼고는 꿈은 꿈인지 티도 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나는 친구가 많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나를 찾으며 나와 함께 웃고 떠들고 논다. 꿈 속에서 나는 모든지 해내고 있다. 집 청소를 하고 이사도 하고 요리도 하고 강아지들을 산책 시킨다. 문득 아, 꿈이구나 싶다. 내가 이렇게 모든걸 해내고 있을리가 없으니까 이건 틀림없이 꿈이구나.


꿈속에서 매번 나는 집을 치운다. 깨끗하게 왼쪽 위 책장 선반부터 물티슈로 먼지를 닦는다. 한 칸, 한 칸 정성스럽게. 그렇게 내 삶도 반듯하게 닦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택배 온 물건들을 손으로 마구잡아 뜯지 않고 가위로 정성스럽게 테이프를 잘라서 곱게 연다. 내용물은 꺼내고 상자는 또 반듯하게 접어서 재활용에 내놓는다. 모든게 정갈하고 깔끔하게 진행된다. 아, 역시 이건 틀림없이 꿈이구나.


잠시 잠에서 깬다. 오후 두시, 아직 한참 더 잘 수 있겠구나.. 우울한 사람에게 밤에 자는 잠과 낮에 자는 잠은 다르다. 밤에 자는 잠은 모두가 잘 때 자는 잠, 인간으로써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하는 하나의 필수적인 행동이다. 그 시간에는 모두 잔다.


낮에 자는 잠은 다르다. 햇빛이 가장 찬란한 시간, 모두가 활동하고 밖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시간. 그 시간에 자는 잠은 나의 작은 우울한 연못에서의 헤엄질이다. 나는 사실 자고 있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헤엄치고 있다. 


연못 속에는 내 기억과 생각들이 파편처럼 쏟아진다. 북극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들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나의 무의식 속 생각들에 나는 당황스럽기만하다. 그 사이를 끊임없이 헤어친다. 누군가 나를 깨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후 다섯시, 아직도 헤엄을 몇 시간은 더 쳐야 하는군. 힘에 부친다. 약을 먹는다. 이 약들이 최소한의 구명조끼가 되어준다. 불안한 가슴이 쿵쿵에서 콩콩 정도로 느리게 뛰기 시작한다. 다시 베게에 머리를 눕힌다. 연못 속으로 매번 헤엄칠 때마다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깊게.. 그렇게 내려가다보면 언젠가는 깨어나지 않아도 될까?


오후 여덜시, 이제는 합법적으로 자도 되는 시간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저녁약을 먹는다. 온몸에 힘이 풀린다. 조금씩 조금씩 생각들이 흩어진다. 생각들이 파편처럼 흩어져서 다시 내 연못 위로 둥둥 떠오른다. 오늘 밤도 내일 낮도 모레 밤도 그렇게 나는 계속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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