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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감싸던 종이들 13>

Vinyl Sleeve Stories

by JDC

13. Microgroove Nonbreakable - Columbia Records

_MG_2469.jpg Company Sleeve 45 Columbia - Green And White Striped “Microgroove Nonbreakable”


녹색과 흰색 줄무늬의 이 종이 슬리브는, 앞면 한편에 누군가가 1956년 11월 3일이라고 메모를 남겨둔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45 RPM 싱글의 회사 슬리브였다. 겉으로는 아주 얇고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당시 음악 산업의 판을 완전히 바꾼 시대 변화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었다.


그리고 상단에 인쇄된 두 단어. "Microgroove Nonbreakable" 이 문구는 단순 기술 설명이 아니라, Columbia와 RCA Victor 사이의 ‘속도 전쟁( War of the Speeds )’이 마무리되고, 시장이 완전히 바이닐 포맷으로 넘어갔다는 걸 선언하는 문장이었다. 당시 음악을 듣던 대중들에게 “더 좋은 소리”와 “더 편한 경험”을 약속하는, 아주 직접적인 기술의 승리 문구였다. 1948년 Columbia가 33 1/3 RPM LP를 내놓으면서 함께 도입된 ‘마이크로그루브’는 레코드 기술 전체의 게임 체인저였다. 78 RPM 셸락 레코드의 넓고 얕은 홈과 달리, 마이크로그루브는 훨씬 더 정교하고 좁은 홈을 사용해 바늘이 소리를 훨씬 더 촘촘하게 읽어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LP는 재생시간이 길어졌고, 7인치 45RPM 싱글도 작은 사이즈 안에 더 선명한 사운드를 담을 수 있었다. 이 슬리브의 “Microgroove”는 바로 그 Hi-Fi 시대 개막의 기술적 선언이었다.


마이크로그루브가 음질을 바꿨다면, “Nonbreakable”은 재질을 바꿨다. 5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셸락 생산이 공식적으로 중단되고 바이닐이 메인이 되면서 레코드는 “깨지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이 변화는 특히 청소년 문화에서 결정적이었다. 7인치 싱글은 훨씬 가볍고 안전했기에 사람들은 이제 음반을 조심히 다루지 않아도 됐다. 주머니에 넣고, 친구 집에 들고 가고, 파티에 가져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기다. 음악이 일상을 깊이 침투하게 만든 힘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이 슬리브에 남은 한 줄 “1956년 11월 3일”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Longing The Blues” 이건 회사가 인쇄한 정보도, 공식 제목도 아니다. 공식 발매 목록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제목은, 아마도 음반의 주인이 당시 크게 유행했던 'Singing the Blues'와 같은 곡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다르게 기록한 것일 수 있다. 이 한 줄의 손글씨는 대량 생산된 제품에 새겨진 한 개인의 청취 경험과 정서를 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메모인 셈이다. 대량 생산된 디자인 위에 손글씨로 남겨진 이야기는, 오늘날 음악을 재생하는 이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또 다른 감상을 안겨준다.



가이 미첼(Guy Mitchell) -Singing th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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