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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우 Oct 19. 2023

드라마 1

넷플릭스 _ 소년심판

심은석 판사의 대사들이 좋았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고

시원시원했고

피해자 입장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피해자의 가족이 아니길 바랐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

과도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심은석의 과거 이력이 촉법소년에 의한 피해가 아니라

좀 더 세련된 이유는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다가 결국 피해자의 가족으로 돌아온다.


판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는 현실에 없으며

판사가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게 하려면

아들의 죽음과 같은 강력한 행동 동기가 있어야 하고

극을 판사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전개하려면 행동하는 판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서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판사는 극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반대로 강원중 부장 판사의 경우

캐릭터에 오류가 있다고 느껴졌다.


강원중 부장 판사는 소년원 출신의 차태주를 바른 길로 이끌어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데카르트 사건은 극 중 캐릭터와는 괴리감이 있다.

판사로서 하지 않아도 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인물의 자유 의지로

피해자였던 차태주에게 신경을 쏟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을 대할 때는 성적으로 비교하는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냉정한 아버지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밖에서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봐도 괴리감이 있다.


강원중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으려면 차태주와의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하거나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는 식탁에서 성적으로 무안을 주는 씬은 제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씬이 강원중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많이 깨지는 부분이었다. 

(대놓고 성적으로 압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 중 캐릭터의 명예,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원중은 직접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아들이 스스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도록 전개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

(어릴 때가 아니더라도 최근까지)

꼭 이런 인물들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법을 어기는 사람보다 지키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든 게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드라마로, 영화로 

캐릭터화되어 나오는 거라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심은석 판사도 아들의 죽음이 소년범들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온 그녀의 행동들은 어쩌면 이기적인 것이다.


그녀의 행동이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있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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