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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홍 Aug 06. 2024

아무도 모른다

버리는 노래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손가락 좀 까딱거리면 멀리 있는 엄마에게도 바다 건너 사촌동생에게도 말을 걸 수 있다. 땅과 바다를 건너 활자들은 내게로 온다. 음성 편지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귓가에 목소리가 쟁쟁하다. 보고 싶다고, 문득 생각한다.

 여름휴가 때 함께 클라우디 베이를 나눠 마시다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던 엄마의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른다는 이야기.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한 적 없고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엄마는 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건데. 내가 물었다. 네가 자꾸 엄마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하니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사무쳤는 줄 아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너한테 미안하고 답답했다. 너는 정말 내 속도 모르고.


 나에게 난생처음 털어놓으며 후련해하던 얼굴.

 그 말간 얼굴이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때 난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았어. 내가 엄마 얘길 안 들어주면 누가 들어줄까.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

 사람들은 왜 자꾸 나에게 그런 말들을 털어놓는 걸까 엄마.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아이데이션을 하다가 패잔병처럼 집에 돌아왔다. 씻는 둥 마는 둥 욕실에서 나와서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마스크팩을 붙이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한다. 새벽 한 시 반. 날카로운 이빨로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만이 요란하다. 저 고양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적막을 대체 뭘로 견뎠을까. 깨뜨리고 싶은 고요. 그러나 밀어내고 싶지 않은 어둠. 내가 기척을 안 하면 모래는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모래는 나를 부른다. 너는 다 보고 있으면서. 다 보이면서 왜 나를 불러재끼는지. 나는 마지못해 어둠을 향해 모래,라고 대답한다. 그럼 소리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몸을 부비는 뜨끈하고 보드라운 생명체. 오늘 옆집 강아지는 주인이 왔는지 조용하다.

 요즘 나는 아침마다 새로운 고통 속에서 눈을 뜬다. 일찌감치 나간 주인을 애타게 부르는 강아지의 울부짖음. 미세하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울음소리. 제 몫의 외로움을 떠넘기고 간 주인이 밉지도 않은지. 강아지는 포기할 줄도 모르고 몇 시간 동안이나 하도 서럽게 울어서 듣는 나까지 가슴이 미어진다. 하도 가슴이 아파서, 저 집 현관문짝에다 포스트잇에 메모를 적어 붙여둬 볼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강아지가 매일 아침마다 울어요. 아침이 아니어도 그쪽이 집을 비울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게 우는지, 당신은 알고 계신가요? 시끄럽지 않아요. 다만 듣는 제가 다 서러워져서 참기가 힘듭니다.

 실행에 옮기면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싶을까봐 오늘도 참았다. 듣고 있으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저렇게 우는데도 코딱지만한 집에 강아지를 혼자 두는 것은 동물학대가 아니던가. 옆집 강아지가 우짖을 때마다, 울적해지는 건 모래도 마찬가지인지 모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지만 왠지 눈빛이 가라앉아 보인다. 내 맘이 가라앉아 그런 건가. 나는 그럼 괜히 덩달아 미안해져서 출근을 앞두고 모래한테 온갖 아양을 떤다. 평소엔 잘해주지도 않으면서 괜히 모래야 하고 불렀다가 어깨 위로 들쳐 안았다가 등을 쓰다듬었다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모래의 표정을 살피며 마음 한켠의 찜찜함이 커져가는 것을 떨치지 못한다. 밥그릇과 물그릇을 확인하고 가방만 챙겨서 현관문을 열어젖히는 오늘과 어제와 그제와 언젠가의 내 모습. 모래는 현관 앞에 두 앞발을 얌전히 모으고 앉아 그런 나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결국 나도 옆집 남자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내 몫의 외로움을 저 작은 고양이에게 떠넘겼다. 먹기 싫은 접시를 나에게서 멀찌감치 밀어 놓듯이. 너에게 나는 정말 별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도 어느샌가 너는 내 곁에 와서 코를 박고 자고 있다. 얕은 안도감과 깊은 후회가 교차하는 새벽.


 엊그제 혜령이와 세 시간 동안 영상통화를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낮밤 없이 스무 시간을 내리 자고 나서 어제와 오늘 또 이 시간까지 깨어있다. 사람에 대한 피로감으로 머리꼭지 끝까지 무력감이 차올랐던 날. 나는 거의 코마상태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 리셋.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는 번듯하게 출근을 했고 적당히 웃었고 적당히 딴생각을 했으며 적당히 떠들었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가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밀려오는 것은 혐오감이었다. 물리적으로 조금이나마 멀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썰물 빠지듯 깊고 깊은 잠으로 모든 것을 밀어내고서 마주한 오늘. 나는 편안했다. 달라진 내 표정과 애티튜드를 바로 느꼈겠지. 나는 그렇게나 얄팍한 사람이니까.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호쾌했으나 시선처리가 그렇지 못했다. 눈은 영혼이 통하는 길이라고 했다.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 그만한 확언은 없었다. 내가 혐오하는 것은 그의 무능함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럴싸한 포장지로 감싼다고 감쌌는데 채 다 가려지지 못해 삐죽 튀어나와 보이는 그의 됨됨이.

 왜 꼭 보려 하는가. 어느 시구에서 그런 대목이 있었다. 물론, 그의 바닥을 난 한사코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드러내보였을 뿐. 그럭저럭 잘 버틴다고 해서 내가 그런 인성까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인간은 모두가 그렇다지만 고삐를 잘 잡고 자기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타적인 배려고 지성이 아니던가. 일주일 새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별별 축하 인사를 다 받았다. 나는 그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향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는 많은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으나, 때로는 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피해야지. 정말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는 피하고 싶다. 일상에 젖어 내 바운더리를 많이 내어주고 있었구나 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넋 놓고 있던 내 잘못이 팔 할. 아직도 겪지 못한 게 있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에 피가 죄다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멀었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가야 할 길을 잃는다.

 나에게 빙빙 도는 화살이 있다면. 그 화살이 마침내 어딘가를 가리킨다면. 화살이 가리키는 그 방향으로 주저 없이 달려갈 텐데. 세상은 너무 넓고 사람은 너무 많고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하다.

 덩그러니. 이 외딴곳에 왜 나 홀로. 돌보아야 할 고양이와 함께. 어쩌면 내가 모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모래가 나를 돌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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