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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24. 2024

나를 바꾸고 싶다면 집을 환기하고 청소하세요

허리가 아픈 뒤로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염색을 중단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안 가는 미용실을 더 잘 안 가게 되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잡지를 못 읽는 거였다.


여성중앙, 코스모폴리탄, 우먼센스, 보그 잡지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는 것보다 미용실에서 읽는 게 훨씬 재밌다. 쉽게 볼 수 없는 화려한 명품 가방과 액세서리, 연예인 인터뷰는 기본이고 평소 몰랐던 분야의 좋은 기사를 접하면 카메라로 찍는 페이지도 많았다. 아! 별자리 운세와 섹스칼럼은 군중 속에서 몰래 읽는 짜릿함이 더 컸던 건 비밀!



오랜만에 머리를 자르러 일 년 만에 미용실을 갔다. 두피 클리닉을 서비스로 해준다는 말에 얼른 잡지 두 권을 챙겨 자리에 앉았다. 클리닉 약을 도포하고 20분쯤 기다리는 시간, 다른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는 동안 나는 천천히 잡지를 펼쳤다. 형형색색 브랜드의 가방을 보고 셀럽들의 패션 센스를 보고 난 뒤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 흥미로운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집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출판 홍보와 함께 이루어진 인터뷰이자 설계와 실측에 움직이는 하우스를 만드는 건축가보단 거주하는 사람들의 홈앤라이프를 상상하는 작가로서 꺼낸 이야기들이었다.


선진국 연구의 25% 정도가 현재 사는 곳을 정서적 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연구를 사례로 들었어요. 왜 집은 ‘홈’이 될 수 없을까요?

일상에 대해 자각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니체는 어느 날 산속을 거닐다 커다란 바위를 보고 우리 인생과 유사하다는 걸 발견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쳇바퀴 돌 듯 반복되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요. 일상을 자각하고 사랑하는 힘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일상’을 잘 인지하는 순간에서 시작돼요. 그 일상의 중심에 집이 있고요. 인식하지 않은 채 습관대로 사용하면 집은 ‘하우스’에 그치고 말아요.


집을 통해 내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사람은 언제 가장 나다울까요. 일하거나 타인과 교류할 때? 내가 사는 동네나 아파트 평수가 나를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선호하는 수면환경을 고심하며 고른 커튼과 이불, 사소한 취향이 반영된 컵, 이런 것들이 모여 ‘홈’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엘르코리아> 건축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기록


그동안 별다른 생각이 없던 ‘우리 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인터뷰 기사였다. 매일 인스타그램에서 잘 꾸며진 남의 집을 보며 부러워하기만 하고 정작 우리 집엔 무신경했던 시기에 저녁을 먹고 잠만 자는 곳이 전부인 집이 떠올랐다. 잔뜩 쌓인 설거지를 하는 주방,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는 화장실, 이파리가 노랗게 되어야 화분에 물을 주는 내게 우리 집은 최소한 사람답게 사는 집이 되게끔 하는, 의무적인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었다. 한동안 집을 꾸미는 일에 꽂혀 예쁜 화병에 꽃을 꽂거나 플라워 패턴의 쿠션을 사서 소파에 진열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잠깐의 성취감만 있을 뿐 다시 그 쿠션에 머리를 대고 눕는 날이 더 길었다. 예쁜 집을 사각 프레임에 가두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장소로만 생각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요즘 나는 집에서 좀 더 편안한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고 있는 중이다.

모델하우스처럼 보이길 원했던 마음이 ‘홈, 스위트홈‘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예전엔 강제성을 띤 정리와 정돈이 누군가를 위한 일이었다면 지금은 내 마음에서 나오는 진심에 가까워졌다.



일요일 오후, 남편은 반신욕을 하러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는 거실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넷플렉스를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고 아이패드로 글을 쓴다. 허리가 아프면 소파에 누워 배 위에 쿠션 하나를 턱 올려두고 읽다 만 고전 소설을 펼치는 오후를 보낸다. 옆 협탁엔 과자 부스러기와 뚜껑이 열린 탄산수가 놓여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 아니면 마음이 불편했던 내가 이제는 좀 더 너그러운 눈길로 모든 것들을 그냥 놔둔다. 언젠가는 치울 거란걸 알기 때문이고 흐트러진 물건이 늘어뜨리는 그림자에 눈길이 자주 머문 탓이었다.



우리 집 거실엔 늘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그 이유는 남편과 내가 각방 아닌 각방을 쓰고 있어서인데 서로의 수면패턴을 존중하고 질 좋은 잠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따로 자기 시작했다. 거실에 매트리스를 두니 tv를 보며 편하게 쉬고 그러다 졸리면 스르륵 잠드는 밤이 행복해졌다. 주말 밤엔 좁은 매트리스에 함께 누워 너도 나도 먼저 자는 밤이 따뜻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실 한 구석에 또 하나의 물건, 어두침침한 색깔의 워킹패드가 놓여 있어 언제든 다른 방으로 치워버리겠노라 다짐했지만 역시 tv라도 봐야 겨우 운동하는 우리 부부의 습관을 위해 그대로 두고 있다. 언제나 깔끔하고 이상적인 거실 모습을 위해 애쓰던 일들이 지금은 우리 부부가 최대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생활에 디테일을 다듬는 중이다.



<집생각>에서 “나를 바꾸고 싶다면 자기 계발서보다 집을 환기하고 청소하는 것을 추천한다”고도 했어요. 집과 자존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집을 통해 내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자는 동안 많이 뒤척였는지, 건강하게 먹고 있는지, 청소를 통해 집을 정갈하게 가다듬다 보면 내가 온전해지는 순간이 찾아와요. 깨끗하게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순간 찾아오는 안도감과 만족감 같은 것 말이에요. 집을 돌아보고 비워내는 행위는 나를 찾아가는 시작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계발서보다 유용할 수 있는 거죠. 또 공간이 정리돼야 뭘 하든 집중도 잘되고요.
<엘르코리아> 건축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기록


겨울 내내 나의 출근차림은 검은 슬랙스 바지와 두세 개로 돌려 입는 니트였고 추우면 조끼 하나를 더 껴입고 외투는 검은 롱패딩이었다. 매일 아침에 뭘 입을지 고민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옷을 입으면 하루의 한 단계가 단순해진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감정과 고민 속에 이 시간이라도 간결해진 프로세스가 있는 삶은 꽤 만족스러웠고 그 기분에 더해 봄도 되고 해서 드디어 옷방을 정리했다.


서재와 거실, 그리고 부엌은 종종 나의 애정 어린 발품으로 계절별로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고 소품으로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옷방은 정리할 엄두가 안 난다는 핑계로 손님이 오면 늘 문을 닫아 놓았다. 그러나 매일 같은 옷을 입으면서도 매번 다른 옷을 또 사는 나의 소비 패턴을 인지한 뒤로 이젠 때가 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높이 쌓아 올린 옷 무게에 휘어진 행거에게 숨을 주기 위해 좀 더 큰 바지걸이 행거를 추가 주문하고 몇 개의 서랍도 구매했다.


일단 장 서랍 속 구석구석에 박아 놓은 옷들을 살폈다. 5년이 넘어 목 때가 누렇게 변한 티셔츠를 버렸고 예쁘다고 생각해서 산 색색의 바지들도 언젠간 입으려고 끌어 모았다가 마침내 손을 놔줬다. 2년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거기 끝난 거고 헤어질 결심은 결심에서 끝낼 게 아니라 정말 헤어져야 끝이니까.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늘 없어 보였던 청바지를 모아 색상별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걸었고 셔츠는 셔츠끼리, 니트는 니트끼리 모으니 한눈에 내가 가진 옷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옷방을 다시 완성하니 코스트코백 4개 분량의 버릴 옷과 목도리, 모자가 나왔다. “세상에, 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또 새로운 것을 사고 있었다니.”


티는 안 나도 옷방도 꽤 후련해진 것 같았고 내 마음 또한 어딘지 모르게 알맹이만 남기고 부수적인 미련들을 버려낸 것 같았다. 그 알맹이는 단순한 생활의 정수를 맛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늘 입던 옷들을 정리하고 눈앞에 두니 그동안 방치했던 나의 소중한 공간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는 자기 계발서보다 확실한 자극제가 된다. 어떤 걸 버리고 소유할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나의 안목과 취향을 다시 분류할 수 있고 과감히 버리고 결정하는 순간을 경험하며 여러 상황에서 맺고 끊는 프로세스를 섬세하게 다듬을 수 있다.


살아가는 일은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끊으면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올바른 삶을 살도록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하는 능력은 일단 첫째, 자기 자리를 잘 치우고 정리하는데서 시작하고 그 행위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행동하는 자발성에서 더 견고하게 단단해진다. 아무리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추켜세워도 어딘가 내 마음이 허전하고 꽉 채워지지 않는다면 지금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내가 왜 다른 곳도 아니고 옷방을 정리하며 마음이 좋아졌나 생각해 보니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난 자존감이 살짝 높아진 것 같았다. 어떤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없이 스스로 옷방을 엎어 옷을 찾고, 버리고, 빨고, 다시 찾기 쉽게 정리하면서 한동안 회사 일로 힘들어 없어졌던 자존감이 희미한 윤곽을 자리 잡으며 회복한 것이다. 어떠한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몇 장으로 보는 집의 단면 말고 직접 치우고 정돈하는 과정의 치열함이 내 몸에 남아 앞으로 무슨 일이든지 ’해볼 수 있겠다 ‘는 태도로 연결된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청소하는 일은 넘어진 자신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이자 내 마음에 습관적으로 남은 나의 나약함을 없앨 수 있는 힘이 된다.


옷방을 정리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 아무렇게 바지를 던져 놓는 습관을 버렸다. 가지런히 걸려 있는 바지걸이에 곱게 접어 다시 제자리에 놓는 일이 아직까지 좋은 걸 보면 이 약빨이 좀 더 오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일도 아닌 일이었다. 최소한 깨끗하게 살고 싶어 시작한 일이 네잎클로버를 찾은 행운처럼 내게 좋은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을 청소하는 일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네잎클로버를 찾는 일과 같은 걸까?


아마 그럴 수도 있겠다.

행운은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뜻밖의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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