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년도 훨씬 전, 친구 소개로 남편과 한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나름 성수동에 있는 좋은 곳이어서 “이런 곳에 있다고?”를 말하고 두리번거리며 주소지를 들고 찾아간 곳이었다.
우리 부부가 그곳을 방문한 목적은 '점'을 보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사주카페에서 만원, 혹은 이만 원. 조금 비싸면 삼만 원을 내고 보았던 사주팔자와는 전혀 다른 기대감으로 찾은 점집.
뭐랄까. 어떤 기운과 분위기만으로 압도당하는 그 무엇 때문에 함부로 내디딜 수 없던 영역의 점을 보러 처음 간 것이었는데 의외로 선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거실로 우리를 안내하신 분은 무당이셨다. 영화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우리의 생일을 종이 위에 적으시곤 남편과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걸로 점은 시작됐다.
정말 평범한 집에서 쉽게 대화하듯 이루어진 점사는 별로 색다를 게 없었다.
당시 불면의 고통을 안기는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퇴사를 하냐 마냐는 매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변덕 부리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그것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다만 그 무당님이 꺼낸 얘기 중 흥미로웠던 건 남편이 내게 잘해야 한다는 말과 형제지간에 우애 있게 살라는 말. 그리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 부부 사이에 딸이 보이는데 너무 예쁠 거라고. 자식 덕을 많이 볼 거라나..
한 시간가량 이야기 해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식덕을 볼 우리 부부의 먼 훗날의 모습이었고 앞으로 아이 계획이 없던 우리에게 정말 멀게만 느껴지는 점사이기도 했다.
대체로 다 지나온 이야기와 앞으로 벌어질법한 미래의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점이라기 보단 산전수전 다 겪은 이모가 조카에게 남기는 당부 같은 느낌이었고 하루치의 신선한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당시의 이 서울행은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점이나 사주팔자, 타로카드 같은 것을 볼 때는 정말 큰 고민이 있어야만 효과가 제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것이 해결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가슴속 묵직하게 박혀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가 어느 정도 덜어지고 그 틈에서 비로소 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주팔자, 타로점을 즐겨 찾지만 언제나 그 문제 해결은 내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024년 8월. 한참 덥고 비가 오랜 시간 내리는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었고, 그날은 무슨 모니터를 설치해야 했는지 기사님이 설치봉을 뗐다 붙이고 선을 이었다 자르는 작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현장에 없어도 됐지만 사무실로 돌아가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오랜 시간을 떨어져 보내려 엉덩이를 떼지 않고 있던 참이었는데 평소 재밌게 보고 있었던 한 블로거님이 자신의 아는 분이 전화사주를 해주신다고 쓴 포스팅을 읽었다. 그 글을 보고 의뢰를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작업 기사님의 설치가 다 되었단 말에 화들짝 놀라 급히 전화사주가 가능한 날짜를 여쭈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출근이 괴로웠고 일이 무서웠다.
힘든 게 아니고 짜증 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함께 일하는 게 괴롭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꾸역꾸역 참고 출근을 했다.
차라리 그 사람에게 매우 화가 났거나 너무 싫어서 감정이 상했더라면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원초적인 감정이 아닌, 살살 신경을 긁는 간지러운 괴로움이, 언제 무슨 일로 터질지 모르는 그의 감정을 바라보는 불안함이 내겐 너무 무겁고 무서웠다.
그래서였을까. 다시 그 불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사주 상담을 신청한 것은?
꽤 잘 맞는다고 소문이 난 건지 8월에 신청한 전화 상담은 9월 추석이 지나야 가능했다.
그때까지 나의 이 불안을 잘 모아놨다가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이고, 그 사람과의 트러블은 언제쯤 결말이 날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궁금한 몇몇 질문들도 메모한 반면, 아직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행복한지 물어봐야 하는 서른여덟 살의 내가 좀 한심하다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 어차피 백세 인생을 살아가는 마당에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게 뭐 어떠냐도 싶었다. 마흔에 진로를 바꾸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사람도 유튜브에 널리고 넘쳤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9월 30일. 오후 4시.
전화사주를 본다고 오후 연차까지 썼다.
아무래도 내 고민을 회사 건물 어딘가(화장실이나 휴게실정도겠지만)에서 나눈다는 게 부끄러웠다.
집에 혼자 있을 시간, 전화 너머의 그 분과 나만 존재하는 장소에서 은밀하고 솔직하게 내 인생을 알아보고 싶었다.
마치 첫 데이트 신청을 기다리는 것처럼 3시 30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직 나의 생일 숫자와 목소리만으로 나의 운명을 듣는 날.
굉장히 신선하고 오묘한 감정이었다. 그동안 카페에 앉아 초조한 표정으로 사주를 봐주는 분의 얼굴을 살피며 잘 맞히는지 아닌지 보겠다는 야릿한 표정을 보일 새 없이 이번엔 전화 목소리와 호흡에 집중하면서 글자와 단어 하나하나를 잘 들어야 한다. 마치 중학생 시절의 폰 채팅을 하는 소녀의 마음처럼?
혹여나의 통화 목소리에 운명의 힘이 조금이라도 안 좋게 영향을 끼칠까 몇 번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 안녕하세요 ‘ 인사를 연습했다. 스스로 설정한 나의 목소리는 안정적이고 차분한 여성 톤이었는데 이만하면 똑 부러지는 인간의 이미지를 풍길 수 있으리라.
3시 40분.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아니 벌써?)
너무 놀라서 미처 완성하지 못한 허둥대는 갈라진 목소리로 “여보세요~?”하고 말았다.(윽)
“안녕하세요. 뜰님 맞으시죠?”
“아, 안녕하세요. 뜰입니다. 반갑습니다.”
한 손으론 휴대폰 스피커를 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패드의 녹음 어플을 켜느라 어색하게 인사하며 들을 준비를 마쳤다.
전화사주를 봐주시는 분(편의상 전사님이라고 하겠다)은 기분 좋은 아나운서 톤의 말끔하고 똑 부러지는 발음과 함께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하셨다. 혹시 그동안 사주를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사주팔자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가볍게 물어보면서 본인이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잠깐 설명하자면 사주팔자는 개인이 먼 길을 갈 때 내비게이션을 틀고 가면 덜 헤매는 것처럼 8개의 글자가 우리가 이번 생애에 완수해야 할 미션일 수도 있고, 업일 수도 있으며,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살려보고 피해볼 것은 피해보자고 알아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어색할 줄만 알았던 전사님과의 상담은 뜻밖에 엄청난 집중력을 불러왔다. 목소리로 나란 사람을 듣는 게 이토록 감미로울 줄이야.
물론 전사님의 목소리도 한몫했겠지만 조곤조곤한 말투로 나의 재능과 특기를 듣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신선했고 내 사주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욕심, 넘치는 자만, 오만한 것들은 겸손함으로써 흘려보내란 이야기가 와닿아 A4용지에 팍팍 별을 그리며 표시해 놨다.
사실 이 전화상담을 신청한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었다. 회사 안에 존재하는 나의 ‘적’, 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궁금했던 건데 그분이 한 달 사이에 퇴사를 해버렸다. 내가 했으면 했지 그 사람은 평생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것처럼 열심히 일해 놓고 갑자기 떠나 버려 우리도 당황하며 한 달을 보낸 순간. 그 이야기를 전사님께 하니 내년부터 좋아질 운인데 현재 그 기운이 모아지고 있는 거라고, 아주 잘 된 일이라면서 본일 일같이 기쁜 목소리로 말하셨다.
“내년부터 3년 동안 아주 좋아져요. 다만 본인보다 못한 사람에게 뺏기기도 하고 재능을 펼치는 만큼 문서운이 따라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욱해서 성질대로 안 하고 참고 베풀고 인내하면 아주 좋은 운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아주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아무리 스스로에게 말해도 믿어지지 않아 허공 속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말이었다.
이왕이면 진심이면 좋겠는, 간절한 이 말을 가슴에 꼭 담았다.
내게 어떤 재능이 있고, 운이 펼쳐져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벌어질 일은 벌어질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은 당하도록 되어 있다. 인생은 폭풍우를 피하는 게 아니라 폭우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게 인생이고, 즐길지 말지를 선택하는 건 내 마음속에 있을 뿐.
그러나 나는 폭풍우를 피하는 일, 혹은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일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폭우를 만나지 않을 거라는 의심 없는 말 한마디가 너무 간절했다. 설령 결국 폭우가 내릴지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비는 안 와요. “라고 하는, 근거는 없지만 반드시 그럴 거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었다.
특별한 노력이나 애쓰는 일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로워지는 때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시간을 의심 없이 껴안을 거다.
물론 이 말이 얼마나 어린애 투정처럼 들릴지 모르는 바 아니다. 세상이 결코 우습지 않은 것도,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것은 절대 없단 것도. 곧 마흔이 되는 사람이 어찌 그런 이치와 진리를 모르겠냐마는 정말 바람은 이랬다.
내 인생이 그 어떤 불행도 만나지 않고 행복과 평온으로 채워졌으면.
터무니없는 소리라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고, 타로카드를 보는 것 아닐까.
어차피 내게 주어진 학업, 시험준비, 구직 활동, 연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변 관계, 본인의 성격에 맞춰 어찌어찌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힘들게 그 일들을 이뤄냈으면 하는 바람이고,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기운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줬으면 하는 간절함에 점을 본다.
“그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나이도 있고 이직하는데 불안도 커서 가능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오래 있고 싶은데 버틸 자신도 없어서 전화사주 상담을 신청한 거거든요. 나이가 마흔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진로를 고민하는 제가 한심하기도 한데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까요?”
이 정도 상담이면 그냥 ‘내 인생 좀 대신 살아주슈~’라고 생떼를 부린 격이 아닌가. 여태껏 살면서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르면 그동안 헛 산 게 아닌가도 싶고.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렇게 대충 살아온 건지 매우 의문스럽다. 그리고 앞으로 껴안고 살아갈 내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니. 허참!
누구나 통제 밖 미지의 영역에 자신을 의탁하고 싶은 피곤함과 궁금함과 의존의 욕망을 갖고 있고, 운명과 운수, 그리고 알 수 없는 우주적 원리의 외전 혹은 비의의 작동법에 대한 호기심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을까요.
책 <음악소설집> 은희경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마흔이 다 되어도 어른이란 말이 생경하다. 자고로 어른은 일도 척척하고 돈 잘 벌고 모르는 것도 별로 없어서 웬만한 인생 고비쯤이야 거뜬히 넘길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일도 버벅거리고 돈도 없으며 인생의 고비 앞에서 날마다 자빠진다. 아프면 아빠가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밥 먹기 싫으면 엄마가 맛있는 떡볶이를 해주었던 유년 시절.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께 기대온 시간이 아득하다. 나의 모든 세상이 부모님 중심으로 돌아간 시간을 지나 이젠 스스로 세상을 짓고 정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보이지 않는 손에 내 인생을 의탁하고만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말로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책과 글로 어루만질 수 있는 문장은 언제든 손 뻗으면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내게 직접 전달하는 음성은 한 번이라는 휘발성과 우연히 전달되는 시간이 겹쳐져 이뤄지는 딱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억에 존재한다. 글자처럼 일단 새겨지면 지워지지 않는 속성과는 다르게 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대화이지만 눈에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단 귀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순간적인 감각은 더욱 또렷했다.
전사님은 그 후 몇 번이나 앞으로 쭉 좋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말의 운명이 진짜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화사주 상담 후 상황이 녹록지 않고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질 때마다 곧 좋은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을 넓게 쓸 수 있고 안 좋은 일엔 유연하게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앞으로 잘 될 운명이라고 하니 내일이 기대되는 것. 행운이 이렇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