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름답다.(2015.7.6)
#1. 아름다움이란?
아름답다는 말은, 그 근거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군들은, 절도 있게 행과 열을 맞춰 서 있는 군인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끼겠지요. 저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그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과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 인간의 삶에 있어, 그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중 하나임과 동시에, '만들어가야할' 삶의 조건 중 하나입니다. 사랑을 나눌 때의 느껴지는 우리네 감정은, 사랑이 우리이게 주어진 조건이란 걸 증명해줍니다. 어떤 삶의 양식에서보다,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은 강렬하고, 때론 오래도록 따뜻합니다. 또한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내 곁에 누군가를 위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그렇기에 사랑은, 한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의지에 대해선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그토록 과소 평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의지란, 자기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이 세계에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앞서 언급했듯이 분명히 가치있는 것이지만, 그 사랑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그 드러남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그 사람의 의지가 강하게 존재할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한 의지를 언제나 강하게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문제조차 함께 해결하지 못해 쉬이 깨져버렸던 우리네 과거 연애사를 생각해보면, 쉽사리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때론, 그 의지를 발휘하는 게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기 때문이지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라는 말이 존재하는 건, 사실 그 상황에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자기 믿음을 굽히지 않는 의지를 계속 보여준다는 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의지이든 간에,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거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2. 귀도의 인생은 아름다운건가?
그런 의미에서, 귀도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기 가정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며, 그 사랑에 대한 의지를, 그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꺾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의 가정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사랑했습니다. 자기 생을 온전히 내던져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말이지요. 그의 상황은, 그 어떤 상황보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귀도의 가족들은, 귀도의 유태인이라는 핏줄 때문에 함께 수용소로 끌려왔습니다. 그것이 부당한 것이고, 그 자체가 귀도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 귀도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귀도는 그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느끼고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는 힘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는 없다라고 하는데서 오는 무력감, 그 끔직한 감정에 끊임없이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족을 살리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고, 자기 목숨을 내던져서까지, 자기 아이를 지켰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습니다.
#3. 아름다운 삶을 산 귀도는 행복했을까?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삶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나봅니다. 귀도는 포로수용소에 끌려간 이후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곳에 끌려온 그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그에게는 매순간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의 목숨이 자신으로 인해 위태위태한 상황이니까.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내내 웃고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그의 웃음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표정은, 그가 아이와 같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완전히 달랐거든요. 그가 가족과 함께 포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그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웃음을 연기해야 했고, 본래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했습니다. 자신의 확실한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까지 말이지요. 진짜 영혼이란 것이 있고, 그래서 죽은 이후에도 세계를 볼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다면, 귀도는 그 이후에야, 그러니까 조슈아와 도라가 살아서 돌아가는 모습을 본 그 이후에야, 안도하면서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전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4. 우리들 아버지들은 어떨까? 우리 아버지들도 귀도 같을까?
귀도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 이러한 아버지가 단순한 영화 속 존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그러한 아버지들은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거대한 시장/정치 권력은 비윤리적/비상식적/반사회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그러한 권력의 행사를 막지 못하고/않고 있고, 또한 그러한 권력 앞에선 개인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땅콩회항과 같은 사건은, 한국에선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아버지는 비일비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그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하고, 그 아버지는 홀로 자기 가족을 지켜야하니까. 부조리가 넘쳐나는 이 한국 사회에서는, 한 아버지가 자기 가정을 지키려면, 때때로 그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합니다.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서툴고 때론 투박하기에, 당신의 아버지는 귀도와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이 깨지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고, 그래서 성인이 된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거라면, 그러한 아버지조차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또한 사랑하기 위해 지금까지 미친듯이 노력해왔던 분들입니다. 그 아버지는 아마도, 그 가정의 밖에서 그 가정을 지키고자, 때론 맞서 싸우고, 때론 무릎 꿇고, 때론 눈물을 흘리셨겠지만, 퇴근하는 그 순간에는 그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운이 좋게도, 나의 아버지 또한, 그러한 아버지 중 한 분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내게 금수저를 쥐어주지 못했고,
나의 아버지가 또
내게 원빈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DNA를 물려주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5. 시와 노래
문득, 시 한편과, 노래 한편이 떠오릅니다.
글보다는 예술이 각자의 감정을 잘 만져줄 것이므로,
이 글에 공감하신 분은,
아래 시를 보시고, 링크에 걸어둔 음악을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자이언 티(Zion.T), 양화대교, https://youtu.be/uLUvHUzd4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