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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Brown Aug 11. 2015

[영화] Knocking on heaven's door

태양의 삶, 은하수 세미나 후기(2013.7.29)



# 1.

Knocking on heaven's door 

사실, 처음에 봤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이 본 영화인데,

세미나에서 얘기 듣고 말하면서 여러갈래로 해석이 되었네요.

이래서 역시 이래서,

글을 쓰고,

세미나를 해야되는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사람은 머리로 사고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 같지만,

손과 입으로 함께 사고할 때 비로소,

그 사고가 풍성하게 진행되고, 정리되고 하는 것 같아요.

인간의 이성은 사실,

우리의 발달된 두뇌에도 기반하고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자유로운 손과, 발달된 음성기관에도 기반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갖고 있으면, 써야겠죠? ㅋㅋ 


#2 태양의 삶, 루디와 마틴의 마지막 삶

"천국에 대해서 못 들었나? 그곳엔 별다른 얘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 바다에서 바라 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서 봤어야 하는 부분이 이거라는 걸, 왜 혼자 볼 땐 몰랐을까요.

해가 바다로 떨어져서 사라져가는 시간들은, 영화 속 루디와 마틴의 삶의 시간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비로소, 그 두 시간들이 제 머릿속에 오버랩되더군요.


불이란 생명의 은유입니다.

그것이 갖고 있는 열이, 그 은유의 다리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먼저, 생물학적 차원.

열은, 생명체의 생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생명을 갖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그 안에 열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개체에 생물학적 죽음이 선고되는 순간,

그 개체의 몸은 차갑게 식어버리지요.

둘째, 심리적 차원

열은, 욕망을 상징합니다.

열정, 내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등등의 표현을 떠올려 봅시다.

뜨거움을 상징하는 색이 빨간색이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이 색으로 표현된다는 것도 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 때 이 욕망은, 다시 우리 인간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전체주의적 사회에서(개인의 욕망을 상실한 사회에서) 사람들을 보고, 생기가 없다고 표현하는 걸 생각해보세요.

남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시킬 때,

그걸 하긴 해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게 아니니까.

그 때의 삶은, 왠지 내 삶, 내 생명이 깃든 삶이 이 아닌거 같잖아요.

우리 각자에게 있어, 내가 나다움을 보일 수 있는, 추상적 개념으로서 인간이 아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로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무엇으로써 판단하나요?

내가 진짜 내 주체적 욕망에 따라 행위하고 있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나요?

욕망은 그래서, 우리의 생이 됩니다.


정리하면 요런 구도가 되겠네요.

      불 ========= 생명

                열

생물학적 생/심리적 생(=욕망)


그런데 그 불의 총체인, 강렬한(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의 강렬한) 태양이,

차디찬 바다 속으로 떨어져 갑니다. 

그 해의 강렬함이, 바다의 냉기에 의해 식어가는 그 순간을 떠올려봅시다.

치~~이~~~~~익!

한 생이 꺼져가는 순간이라고 한다면,

하..... 더없이 슬픈 순간입니다.

루디와 마틴이 처음에, 그 죽음의 선고를 받았을 때,

바로 이런 순간을 상상했겠지요.


그런데 태양은 바다로 질 때, 그 언제보다 새빨간 공으로 변하며,

그 전에 없던 아름다운 석양을 만듭니다.

루디와 마틴은, 바다를, 죽음을 생각하며, 바로 자신들도 그 석양을 만들기로 결정한 겁니다.

자신들이 이태껏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욕망을 이뤄보기로 결정한 거지요.

마틴의 그 욕망은, 어머님에 대한 숭고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루디의 그 욕망은, 두 여자와의 하룻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다로 향하는 길에,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떨어짐을 앞둔 태양처럼, 

그 욕망들을 발산합니다.

석양은 아름다움을, 마틴에게는 눈물을, 루디에게는 성적 환희를 남겨주었네요.


자신들이 가장 하고 싶었으나 하지못했던 것들을 하고 난뒤,

루디와 마틴은 바다에 도착합니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욕망을 인지한 데에 슬펐겠지만,

그래도 그 죽음 덕택에 비로소 자신들이 가장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뤘으므로 여한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바다 앞에서, 루디와 마틴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다 아래로 떨어져 자취를 감춘, 태양처럼요.


#3 내 삶


천국에서는 석양만을 이야기한다네요.

천국에서 심심하지 않으려면, 각자 자신의 석양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속 루디와 마틴이야, 진짜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신들이 하고 싶은걸 다했지만, 현실 속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못할 겁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삶의 모습까지가 아닐까 싶어요,

물리적 죽음이 눈 앞에 온 순간은, 사실 이미 늦은 순간이니까.

현실 속 마틴은, 돈이 없어 그렇게 어머님께 선물을 하지도 못할 꺼고,

현실 속 루디는 음...... 이건 모르겠네요 ㅋㅋ

불현 듯, 박명수의 명언이 생각나네뇨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것이다.”

노인이 돼서 죽음 앞에 가서야, 아 내가 하고 싶은건 그게 아니었는데.... 라는 탄식, 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것 같습니다.


죽음의 인식은 이상한 마력이 있나 봅니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을 뭘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일주일 뒤에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사는 것처럼 살고 있을까요?

그 때는,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겠어요?

그럼 한달 뒤에 죽는다는 걸 안다면요?

그럼 일년 뒤에 죽는다는 걸 안다면요?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그 무언가, 그러나 지금껏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하게 될꺼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백년 안에 죽는다는 걸 알아요. 

각자의 미래 중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이거 하나 뿐이에요.

그러면 그 시간 안에,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가치있는 것들을 해야하지 않겠어요?


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순간부터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들어가기 전까진, 이건 불가능한거 같더군요. 슬픈 현실입니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언제가 죽는 건 확실하므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가치있는 걸 하자고, 내 욕망에 따라 살자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살고 있습니다. 

죽음의 물리적 시간이 가깝지 않을지 모르지만,

죽음의 심리적 시간은 언제나 제게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항상 최대한 꽉꽉 차게 쓰려고 하고,

제가 가치 있는 일을 이루고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때때로 잠의 유혹과, 웹서핑에 의해 종종 흔들리긴 합니다 ㅋㅋ)

 

저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대학생 분들은,

적어도 대학에 있는 시간만큼은.

그리고 더불어,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닌,

삶의 매순간을 석양빛으로 물들이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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