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해야 한다.
독자에게 쓰는 편지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끝자락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매서운 겨울도 지나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창밖에는 시원한 봄비가 내립니다.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자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한 달에 한 번 글쓰기조차 버겁습니다. 직장과 육아에 지쳐 요즘은 잠들기 바쁩니다. 어쩌면 이것도 핑계입니다. 게으른 탓입니다.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여전히 500명대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아이들과 단 한 번도 외식한 일이 없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운 것보다 지금도 최일선 현장에서 애쓰는 의료진과 방역팀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겐 ‘제발 한 명이라도 더’ 방역수칙을 지켜주길 바라는 절실함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코로나 상황에서 내 자리에서 실천한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로나가 발병한 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를 공포와 혼돈에 빠지게 했다. 발병 초기만 해도 사스와 메르스 때처럼 잠시 머물다 지나갈 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집단으로 인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특히 작년 8월과 12월 대유행은 사람들의 실낱같은 희망 의지를 꺾어버렸다. 몇십 년을 이어온 가게가 문을 닫거나 휴업을 선택했고, 문을 열더라도 빈자리만 가득했다. 프리랜서나 소상공인에게는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복지관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전북 김제라는 작은 농촌 지역이다. 복지관 후원자의 80%가 소상공인이다. 따라서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복지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자 직원들과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늘 받기만 했는데 우리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 안심 가게, 안심 식당, 안심 업체처럼 스티커를 제작해서 가게 문에 붙이면 어떨까?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서 홍보해 보면 어떨까? 소상공인들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가게 사장님들을 찾아가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팀원과 이틀에 걸쳐 여러 가게를 방문했다. 광고기획사, 커피숍, 돈가스 가게, 빵집, 슈퍼, 꽃집, 떡집, 음식점, 사진관…. 방문한 곳마다 하나 같이 상황이 좋지 않았다.
꽃집은 입학식도 취소, 졸업식도 간소화, 결혼식을 비롯해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어 타격이 컸다. 사진관은 여권 사진 손님이 많았는데 해외여행 길이 막히니 촬영할 일도 없거니와 각종 행사와 모임도 취소되어 손님의 70%가 줄었다고 했다. 떡집도 계속되는 행사 취소로 주문량이 크게 줄었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이 쓰는 SNS나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수입은 크게 줄었지만 비싼 임대료는 그대로였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복지관 상조회가 먼저 나섰다. 상조회에서 직원 비대면 가족 모임을 기획한 것이다. 직원들에게 치킨과 피자 쿠폰을 발급하면 음식을 포장해서 온라인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상조회 행사는 구실이고 지역 가게를 이용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치킨가게 사장님도 무척 고마워했다.
같은 시기, 후원 담당자는 지역 가게 100곳을 응원하는 계획을 세웠다. 직원들은 가게 사장님께 전달할 손편지와 감사장을 만들었다. 감사장 문구도 가게 특색을 고려해 만들었다. 감사장을 전달하러 갈 땐 일부러 직원들이 떼로 몰려가서 응원했다. 웃을 일이 전혀 없는 시기지만 우리의 작은 실천이 사장님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랐다. 가는 곳곳마다 사장님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다음으로 직원 월별 식당표도 만들었다. 식단표가 아닌 식당표다. 1월 한 달간 지역 식당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단체로 식당을 찾아가 응원하고 싶었지만,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포장을 선택했다. 우리는 꼬박꼬박 월급이라도 받고 있으니 지역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는 데 의의를 뒀다.
한편으론 이런 고민도 생겼다. 음식을 포장해서 먹다 보니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코로나는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며 비롯된 것인데, 일회용 포장이 오히려 생태계를 더욱 파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직원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냄비를 들고 음식을 담아오는 방식까지 적용해 봤지만, 돈과 시간 에너지가 더 들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지만, 이렇게도 적용하고 저렇게도 적용하다 보면 결국엔 방법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직원들과 이런 고민을 나누고 실천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코로나와 우리 아파트
지난 12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과 50m 거리에 있는 교회에서 집단 확진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지어 아파트 주민 중에 자가격리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입주민 카페는 그야말로 혼돈과 우려의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이 더 두려운 세상,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입주민 카페에 글을 올렸다.
인근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턱밑까지 쫓아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코로나에 안 걸릴 거란 장담을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상상해 봤습니다. 회사는 물론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 이웃에 갈 피해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이 더 두렵습니다. 마치 범죄자처럼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분위기가 더 두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걸리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집도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들과 1년 동안 외식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의도치 않게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우리 아파트에 자가격리자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분이 느낄 심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분도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이웃이잖아요. 잘 이겨내도록 조용히 응원하고 개인 방역에 더욱 신경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의연하게, 지혜롭게 잘 대처합시다. 이웃 가정의 건강을 빕니다.
위 내용을 주민 카페에 올리자 사람들의 댓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자가격리자가 누군지 찾아내는 분위기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글이 많아진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제안한 안부 나누기 캠페인
주민들이 느끼는 두려움, 이웃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멀리하려는 마음을 오히려 사람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에 안부 나누기 캠페인을 제안했다.
포스트잇과 펜을 엘리베이터에 비치하고 우리 가족이 먼저 안부 글을 남겼다. 솔직히 주민들이 얼마나 동참할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포스트잇과 볼펜을 비치한 지 하루 만에 엘리베이터 벽면이 주민들의 안부와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 채워진 것이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아이들 마음이 너무 예뻐서 흐뭇해집니다. 우리 모두 힘내요! 코로나야 사라져라!
주민 여러분, 사랑해요. 대전에서 소문 듣고 왔어요. 아파트 너무 좋아요.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 주민들의 격려와 응원 메시지.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 마음은 어땠을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잊히고 아파트에 대한 애정과 이웃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글을 마치며
현실이 어렵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택배나 음식을 주문할 때, 가게 사장님께 전하는 메시지 작성란에 “코로나로 무척 힘드시죠?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이 한마디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일회용 사용을 줄이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발걸음이 된다고 믿는다. 내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