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를 읽고.
가족이 얼마나 끈끈해지느냐의 차이는 같이 열어볼 수 있는 서랍의 차이라고 한다. '아 그 왜 있잖아~' 하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래그래 맞다 그거'하고 맺어질 수 있도록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유대감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저 시간을 오래 함께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여행을 다녀와서 그 기억을 추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들었는지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이 꽤 인상 깊게 남았다.
단순히 유퀴즈에 나왔던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무슨 내용인지 찾아보지도 않고 덜컥 사버린 '시선으로부터'는 2021년에 읽은 첫 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은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기저기 기억의 서랍을 열어보는 과정을 훔쳐보는 이야기였다.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띠용-했는데 제사 음식 대신 하와이에서 가장 좋았던 것, 엄마가 생각나는 것들을 올리는 과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군가는 엄마와 함께 내려마셨던 커피를 추억하고, 그 속에서 '사실은 내가 더 추억이 많지~'하며 몰래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시선으로부터' p.239-240 , 정세랑 작가
읽다가 한참을 머물렀던 구절이다. 그중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는 죽음이란 것이 한없이 무거워서 외면하려고 애썼던 나에게 마주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대략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온 나의 또래들 중 가까운 이의 죽음을 실로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생각보다 허무했고, 또 생각보다 무서웠다.
불과 며칠 전, 몇 시간 전까지 나와 숨을 함께 나누던 존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을 마주할 때는 마치 배터리가 다 되어버린 로봇 같아서 배터리를 갈아 끼우면 다시 움직일 것만 같다. 불이 활활 타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마주한 후에도 사실은 꿈이었다며 왈칵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는,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무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함께한 시간을 담아둔 서랍 덕분이다.
흑백 필름처럼 남아버린 친할아버지와의 기억은 20년도 더 되었지만 손잡고 강변을 걷던 기억이 또렷하게 서랍에 남아있다.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서랍의 크기는 커지고, 보낸 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한 기억만 남고 서랍이 다시 작아지는 느낌이다.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맞이했던 친할아버지에서부터 이제 막 한 달이 지난 여름이까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