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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ree Apr 06. 2021

뭍에서 걷는 백조를 위하여

고요한 물에 돌던지기, 그 시작의 이야기

집마다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우리 집은 가볍고 실없는 농담을 잘해서 돈독하고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물아래서 고요하기 위해 열심히 발길질하는 백조와도 같다. 서로의 고요함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살피고 또 살핀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아마 넷이었던 우리 집 구성원이 세명이 된 그 시점일 것이다. 언제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가벼운 무게의 말들이 아닌, 어떤 모양으로든 마음에 자리 잡을 어떠한 말을 꺼내기 위해서라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는 주말 이틀 중 하루라도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함께할 수 있을 때 그래야 하는 거구나 하고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일까. 여느 주말처럼 우리는 한산한 카페를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카페의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을 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 누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 등을 하다가 나는 며칠을 안고 있던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도 가족상담 한번 받아볼까?

꺼내기 꽤 어려운 말이었다. 꺼냄으로 인해 우리 집에 어두운 구석이 있다는 것을 공론화하는 한마디였고, 이 말로 인해 일어날 파장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조차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더 늦어버리기 전에 꺼내고 싶었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내가 그 생각에까지 도달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아주 간략하게 덧붙였고 엄마는 엄마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제안해줘서 고맙다며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래, 역시 열린 마음이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추진해야 했지만 나 또한 상담센터에 전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전 내내 고민하다가 전화를 했지만 용기가 다 채워지지 않았는지 '뚜-' 하자마자 얼른 끊어버렸다. 한숨 고르는 찰나에 다시 전화가 왔다. 아차, 내 번호가 남았겠구나. 그러나 그렇게 다시 걸려온 전화에 이유 모를 힘이 생겼고 가족상담을 받겠다고 말했고 시간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길까지도 담담한 척했지만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함께 도착한 시점부터 공은 우리의 손을 떠났고, 이후 몫은 선생님에게 있다고 믿었다. 기본적인 설문지(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누가 가자고 했는지 등) 작성을 마치고 개인별로 20분씩 진행된 면담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 면담 후 다 함께 선생님의 말을 듣는 자리에서 나는 우리 가족이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잘 지내는 척 입고 있던 옷을 벗겨놓은 느낌이랄까. 


아직 가족상담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상담을 할 예정이다. 누군가 하나 주춤한다 해도 그보다 더 뒤에 내가 서서 밀어야만 한다. 물에서만 도도한 백조가 아니라 뭍에서도 능숙하게 걷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셋의 힘을 모아야 한다.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지만, 부디 건강한 우리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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