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 해둔 엄마의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가는 길에 운전기사를 자처한 나는 커피가 먹고 싶지만 너무 찬 건 싫고 밤에 잠 못 잘까 봐 싫다는 엄마를 위해 스타벅스 더블샷 디카페인을 사서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을까, 이제 내년에 한 번만 더 깨끗한 결과를 들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는 좋은 소식을 들고 엄마가 왔다. 기분 좋게 커피를 쭉 빨아들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던 그때가 벌써 5년 전이라니 새삼 시간이 또 빠르다. 너무나도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에 조금은 무뎌져 있었는데 우리도 그런 시간이 있었지 싶다.
그렇게 시작된 기분 좋은 휴가였건만 너무 더운 날씨와 코로나의 콜라보로 우리는 멀리 갈 엄두도 못 냈다. 휴가 3일째에 달래(댕댕이)를 데리고 시원하게 뛰어놀 수 있는 강아지 카페를 갔다. 여름이를 보낸 후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주는 천사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한 서너 시간 동안 달래의 행동 하나마다 웃으며 빛나는 기억을 만들었다.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고, '부고'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친구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순간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 찼다. 내가 너무 연락을 안 했었구나, 몇 년 전 그때 그 수술이 잘못되신 걸까, 자주 들여다볼걸, 얼마나 아픈 시간이었을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바로 다른 친구와 어머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한 약속을 잡았는데 내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 마지막 인사를 모두가 만류하였다. 미안함이 곱절은 되어오는 느낌이었다.
원래 있던 약속을 미룰 수 없어서 어지러운 마음 상태로 나가 한참 대화하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문득 또 친구가 생각났고 정신 차려보니 장례식장 앞이었다. 안에 들어가진 않고 밖에서 인사하는 건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내 키보다 큰 하얀색 꽃이 줄지어선 복도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날 보자마자 폭 안겨 울었다. 내가 조금 더 자주 연락할걸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했더니 친구는 괜찮다며 우리 엄마 건강을 물어왔다. 그 질문이 아프게 찌르는 느낌이었다. 더 미안했다. 한참을 안겨있던 친구가 '그래도 누가 안아주고 안겨있으니까 너무 위로되고 좋다. 고마워.'라고 말했고 그 말에 마음에서 와르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웃고 떠드는 시끄러운 공기였는데, 이 건물 지하에는 온통 흑백 세상에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만 꽉 들어찼다. 공원과 지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야 마땅할 텐데 싶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어머님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힘내'라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 말을 빼고 할 말을 찾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우리 아빠가 계신 곳이니까 나중에 같이 가서 인사드리자고 했다. 내 입을 떠난 말이 친구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빠를 보내던 그때의 내가 들은 그 어떤 말도 마음에 힘을 얹을 수 없었고, 누군가 함부로 뱉은 말은 아직도 흉터다. 흉터를 남기지 않도록 애쓴 나의 말 선택이 옳았기를 바랄 뿐이다.
삶이란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향해가는 과정 속의 오늘
- 웹툰, [닥터 파인의 하루] 중
종종 죽음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될 때 무한한 생각의 굴레에 빠질 때가 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겪고 나면 다시는 못 만나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남은 이들은 여생을 그리워하며 살게 된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걸으면서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글을 보았다. 언젠가 나도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내 그리워했던 존재들을 다시 만날 순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나는 아팠던 이들에게서 아픔은 사라지고 행복만 남을 그곳에서 만나면 들려줄 이야기들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