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ree Jan 03. 2022

기록하기 위한 기록

선명한 채로 남아주길

2021이라는 숫자에 적응이 채 되기도 전에 2022년을 맞이해버렸다. 매년 다이어리를 채우고 있지만 매해 365일을 이야기를 다 쓰진 못했으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2021년의 365일을 다 기록했다. 2020년은 코로나라는 낯선 악당과 싸우느라 집-회사만 반복했고 매일 같은 일상에 나의 하루가 종종 빈칸이곤 했다. 그래서 작년 나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는 '감정을 기록하기'라는 목표를 적었고 똑같은 일상 속 다른 나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년은 나에게 꽤 의미 있고 분주한 한 해였다. 평생 회사원일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프리랜서로 등 떠밀었고 우당탕탕 어찌저찌 나쁘지 않게 또 해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쯤은 함께일 줄 알았던 여름이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야 했고, 여름이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성향인 달래와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1월 마지막 주쯤 소소한 카드로 건네받은 프로포즈로 시작해 10월에는 결혼식을 끝냈다. 돌아보니 한 해 동안 빈칸일 새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감정들을 다 기록해낸 나에게 셀프칭찬을 해주고 싶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맑고 쨍한 날은 그나마 수월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으나 어둡고 습한 날은 겨우 가라앉히고서 펜을 들자마자 또 일렁이는 감정에 치이기 일쑤였다. 밤새 울고 다음날 아침에 차분한 마음으로 기록하려 책상에 앉아 첫 글자를 시작하기까지 한참이 걸리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잊지 않기 위해 눌러썼지만 때로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기를 쓰고 채우는 걸까 싶기도 했다. 올해로 17권째인 이 빼곡한 깜지들은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함부로 버리기도 힘든 애물단지 같은 것이 되진 않을까 싶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나는 사진이든 글이든 기록하는걸 참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기록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사진은 남았으나 시간이 흐르는 만큼 희미해지는 목소리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 쓰던 휴대폰을 다 살려보고, 검은 비닐에 싸서 책장에 꽂아뒀던 비디오테이프도 복원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저녁에 통화하고 끊을 때마다 '잘 자, 우리 공주~'하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소리도 형체도 없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닐 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빠를 보낸 지 고작 8년이 지났을 뿐인데 20년을 넘게 듣던 웃음소리도 가물가물하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사진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도 나왔다. 그러나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일 뿐 말이 없다. 꿈에서조차 아빠는 이제 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죄다 멀어지고 흐릿해지고 선명해지는 건 그리움 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나를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흘러가는 걸 붙잡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담아두고자 하는 마음에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시답잖은 순간일지라도 촬영하고 담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모든 행동을 더욱 지지하려 한다. 올해도 열심히 남겨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가족은 무사한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