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매캐하지만 낭만적인 테라스
누가 우릴 따라다니면서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쬐고 있는 것 같은 쨍한 더위였지만 괜찮았다. 아파트 입구 습도계가 80~90% 사이를 오가는 한국의 더위보다 훨씬 쾌적했고 그늘은 가을처럼 선선했다. 그래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다면 그늘을 따라 걸었다. 걷다 돌아보니 그늘 아래로 햇빛을 피한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면서도 한 발짝 옆 그늘을 두고 햇빛을 오롯이 받아내는 현지인들이 신기했다.
웬만한 식당에는 테라스 석이 있었다. 그것도 인도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도록 의자가 많기도 했고 또 어떤 곳은 양쪽으로 테이블이 놓여있어서 가게 안을 지나쳐가는 느낌이라 송구스럽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은 물론이고 비가 오는 날도 손님은 테라스부터 채워지는 곳이 많았다. 그 사이에 섞여 앉아있으면 앞에 있는 낯선 음식이 내 일상이 되는 것만 같았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처음 갔던 식당도 아침 오픈 시간이 되면 실내보다 야외석이 훨씬 많을 만큼 테이블이 펴졌다가 저녁이 되면 사라지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우리가 유럽에 오긴 했구나 생각했었다. 모든 게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그 속에 우리가 못 견뎠던 단 한 가지는 담배냄새였다. 1년 핀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넘은 남편과 흡연자는 나의 생활 반경 안에 아무도 없었기에 걸음걸음마다 나는 매캐한 담배냄새는 우리를 괴롭혔다. 향긋한 거리는 드물었고 담배가 강약을 조절해가며 우리를 공격했다.
유모차를 밀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편은 경악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물어왔다. 이래도 여행이 좋냐고, 대체 왜 이 도시를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거냐고. 난 그저 여행을 사랑하는 여행객일 뿐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담배도 커피처럼 기호식품일 뿐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오히려 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남편의 반응만 돌아왔다.
로마에 있을 때였다. 분수가 시원하게 나오는 광장을 지나 살짝 기울어진 오르막길을 올라 도착한 이태리 가정식을 파는 식당에 도착했다. 구글 평점 4.9점에 달하는 곳이라 엄청나게 큰 기대를 가지고 도착했고 역시나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28일 여정 중 마지막 날이었고 여행하는 동안 유일하게 줄을 서서 들어간 식당이라 더욱 기대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입구 바로 옆 테라스에 앉게 되었다. 크림소스 없이 노른자로 만드는 정통 까르보나라와 토마토소스 가지 요리, 오렌지맛 환타 두 캔을 시켰다. 환타가 나오고 한 모금 마시자마자 식당 옆 빈티지 소품샵 사장님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 음식이 나오고 다 먹을 때까지 이어진 흡연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지 담배를 먹는지 혼미하도록 연기를 뿜어댔다.
지금도 남편에게 여행 중에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어보면 하루 10,000보를 거뜬히 넘던 걸음수도 아니고 한식이 그리웠던 것도 아니고 '담배연기'라는 단어가 곧바로 튀어나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일부러 연기를 뱉는 것도 아니고 일상인데, 불편한 내가 숨 좀 참으면 되지 뭐'하고 생각했는데 남편에게는 그조차도 힘들었다 한다. 나에게 유럽의 테라스는 조금 매캐하긴 하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기억이다. 갇힌 음악을 듣지 않고 거리의 소리와 섞여 조금 어수선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소음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행복한 테라스를 나는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