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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버터 Jan 12. 2021

공부가 공허해지는 순간

직장 생활 1년 동안 깨달은 진리: 지식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의미 있다

처음 제조업 회사에 입사했을 때, 문과 출신인 나는 어떻게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곧 자기계발이라고 믿었다. 제품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그 제품을 영업하고, 마케팅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란 곧 메일 정독이었고, 나는 가끔 R&D 부서에서 오는 주간보고까지 정독하며, 회사에서 내가 부서의 현황까지 꿰뚫고 있는 가장 박식한 사람이라는 쓸모없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사안이 아니면 메일을 잘 읽지 않으며, 심지어 본인에게 수신된 메일조차도 구두로 언급하지 않으면 그냥 패스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러다, 일이 정말 많아졌다. 입사하자마자 미국 출장을 가며 '여기는 신입을 봐주는 회사가 아니구나'를 마음 깊이 실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견딜 만한 수준이었는데, 점차 일을 제외한 삶이 사라질 정도로 몸이 바빠지게 되었다. 정시 퇴근이라는 개념 없이 제주도, 부산, 인천, 세종, 해남, 대구 등을 쏘다녔다. 10시를 넘겨 숙소 혹은 집에 도착하면, 출장 때 놓친 사무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내 출장을 다니면서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서 온 문의 메일을 처리하고, 아무도 챙기지 않았던 마케팅 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몸이 두 개여도 바쁠 지경이었다.


그러다 그 전까지는 무신경해보이던 사람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사전에 공유된 맥락 없이 긴 줄글을 읽는 행위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 같이 독서를 좋아해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특이 케이스가 아닌 바에야, 구두로 부탁받고 미팅에 참석하고 전화로 응대했던 건들이 기억에 남지 메일로 정성껏 정리해봤자 잘 읽히지 않는다.




더 중요하게,  '아는 것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직장에서 내가 아는 화제가 나오면 반가웠다. 내가 공부하다 서치했던 업체와 누군가가 연락이 닿으면, 괜히 한 마디씩 껴들어 아는 척 하곤 했다. 사실상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내가 그 업체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한 유치한 행동이었다.


지식을 중요시했기에 누군가가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거나, 일전에 전달했던 정보를 반영하지 않거나, 충분한 자료 조사 없이 영업에 나서면 짜증이 치솟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오랫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필요한 공부를 해왔기에 쌓인 짜증이었는데,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풀었던 것이다. 나는 혼자서 하는 공부는 그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선배가 있다. (편의상 A선배라고 칭하겠다.) 괜히 꼬투리 잡기 좋아하고, 불만은 많고, 하는 얘길 들어보면 아는 건 많은데 뚜렷한 대안이나 결과물은 없었던 선배였다. 그 선배가 쓴 회의록을 읽어보면 방향성 없는 디테일의 나열 뿐이라, 활자를 좋아하는 나도 읽기가 싫어지곤 했다.


그에 반해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B선배는 언제나 회의록 시작부터 미팅의 배경과, 미팅에서 도출한 의의 및 앞으로의 협업 계획에 대해 분명히 서술하고 내용을 분배했다. 불필요한 디테일은 생략하고, 목적에 맞는 논의들을 적절한 강조 표시와 함께 배치했다. 그 선배는 거의 누구한테나 일잘하는 사람으로 통했지만, A선배는 B선배가 실수가 많고, 디테일을 빠뜨린다고 불만이 많았다. 일을 빨리빨리 하느라 신중하지 못하며, 엄밀히 따졌을 때 틀린 사실들을 포함하거나 특정 디테일이 생략되어 부족하다고 뒤에서 지적하곤 했다.




그렇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지적할 수 있고, 그만큼 불평 불만이 참 많다. 그 사람 눈에는 활발히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충분한 고려 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며, 모든 결과물에는 디테일적으로 깔 요소들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행동이나 결점 없는 자료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만큼 근사한 결과를 보이는 모습은 아직까지 본 적 없다.


공부를 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다르다. 지식을 꾸역꾸역 익히는 일과 태도를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 다르듯이. 책상에 앉아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과거 어떻게든 완벽을 추구하며 지식을 수집하던 나의 모습은, 나중에 와서 보니 책임을 회피하는 방어적인 자세였다. 지식에는 옳과 그름이 존재하며, 참/거짓의 영역에서는 주관적인 피드백도 골치 아픈 충돌도 없으니까 참 편하다.


하지만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배우려면 행동을 해야 하고, 결과물을 내야 하며, 그 결과물을 기반으로 피드백을 받고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역시 배움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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