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시 안전벨트와 헬멧 착용을 권장합니다(?)
포스터에 적혀 있는 "뒤통수 치는 스타일리시 스릴러"라는 태그 라인은 누가 썼는지 참 훌륭하다. 저 네 단어의 조합으로 이 영화를 아주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장르는 스릴러. 사람 하나가 실종되지만 아무도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실종자는 어느 호숫가에서 시체로 돌아오게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장례까지 치른 마당에 자꾸만 죽은 사람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쩌면 이러한 설정부터가 영화 내내 계속되는 '통수'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은 건지 살아있는 건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은 느낌표와 물음표의 연속. "저 사람이 거짓말을 했던 건가" 하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면 잠시 후 다시 "그게 아닌가"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그럼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생각하는 사이 아까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게 맞다는 증거가 나온다. 이러한 과정이 서너 번 반복되고 나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대체 누굴 믿어야 되는 건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 믿을만한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묻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해서 뭐 이런 영화가 다있어 하며 영화관을 박차고 나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 영화는 정말 스타일리시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블레이크 라이블리(에밀리 역)의 눈 돌아가게 멋진 착장을 감상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세련된 영상미, 심각한 와중에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각본, 스토리를 속도감 있게 끌고 나가는 센스와 트렌드에 발맞춰 유튜브라는 요소를 가미한 것까지.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단 한순간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확실히 '스타일'을 갖춘 영화다.
네 단어로 완벽하게 정리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반대로 이 네 단어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도 된다. 가장 많이 아쉬웠던 점은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 조금 힘들다는 것이다. 속도감 있게 몰아치는 '통수'의 향연은 그만큼 숨 가쁜 긴장감과 흥분을 선사하기는 하지만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게 만든다. 문제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며 뒤통수를 치는 상황을 관객이 납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개연성 없는 사건의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것은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관계에 마찰이 일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서로 스타일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정을 쌓아가던 것처럼 보인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에게 앙심을 품는 관계로 전환되는 것은—극 중 전개 상 무척이나 중요한 포인트이지만—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애정 관계가 얽혀서 라고 보기엔 스테파니와 에밀리 두 사람 간의 유대가 그렇게 얄팍하진 않았고, 스테파니의 평소 성격과 에밀리가 '사망자'로 결론난 맥락을 고려하면 이 둘 사이의 감정 변화가 좀처럼 한 번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이건 어쩌면 후반 작업의 미흡함에서 기인하는 건지도 모른다. 2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사건들이 여유라곤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을 보면 아마 "필요 없는 장면들을 최대한으로 삭제했음에도 117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미묘한 감정선을 강조하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을 끊기지 않게 편집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웬만큼 평면적인 성격으로 설정된 것이 아닌 바에야—극 중에서 등장인물 각각의 성격이 뚜렷이 형성 및 부각될 시간이 부족해져서 결국 인물로부터 사건이 벌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에 인물이 끼어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에밀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있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스테파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션(헨리 골딩 분)은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등등의 복잡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일 텐데, 그게 주어져있지 않다 보니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디테일은 여전히 재밌지만 그 안에서 커다란 줄기를 찾기가 어렵달까.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 장면에 계속 부딪히면 관객은 영화가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순히 일련의 사건들을 연결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 변화가 전달될 수 있도록 보다 섬세하게 편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놀이공원에서 가장 긴 줄이 늘어서는 놀이기구는 역시 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는 매우 심플한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꼭대기에서 단번에 떨어지기. 거창할 것 없는 이 단순한 조합이 사람들에게 주는 짜릿함은 매우 크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그렇다. "뒤통수 치는 스타일리시 스릴러"라는 단순한 조합에, 그 이상의 큰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영화는 확실히 짜릿하다. 보는 내내 기대와 긴장을 멈출 수 있는 순간은 한 번도 없으며,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유머러스하다.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때려대는 뒤통수 좀 조심하고, 까딱하면 놓쳐버릴 스피디한 스토리 진행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안전벨트도 꽉 조여주고 나면 두 시간 동안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기에는 최적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와 스릴러, 두 가지 모두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다 말해주는 듯하다) 더구나 마음도 들뜨는 연말이 아닌가. 예쁘게 장식된 거리보다 더욱 화려한 볼거리가 이 안에 있다. 아니, 사실 개인적으로는 볼거리 보다도 들을거리(?)가 알찬 영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귀를 호강시켜주는 것은 사운드트랙으로 등장하는 60년대의 샹송만이 아니다. 션 역할을 맡은 헨리 골딩의 아름다운 영어를 실컷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는 스테파니가 유튜브에 올리는 브이로그가 사건 전개에서 나름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데, 얼마 전 개봉한 <서치>에서 페이스북을 활용한 것도 그렇고 요새는 소셜 네트워크 및 소셜 미디어를 영화 소재로 삽입하는 게 트렌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추리물인 경우에 더더욱. 확실히 일상에서 온라인 소셜 플랫폼의 비중이 늘어난 만큼 이러한 추세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직접적인 장치로 사용되는 것은 최근의 경향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새롭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잠깐의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