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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Sep 25. 2022

싹수가 보여야

회사에는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일 못하는 게 딱히 흠은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일정 비율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일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센시티브(sensitive) 하다.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은 타고나는 것으로, 가르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센시티브 하지 못하여 일이 느리고, 많은 걸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는 동료를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에서 출중하고, 다음 일까지 알아서 척척 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공부도 미리 해놓는 동료와 일하면 좋겠다. 근데 그건 욕심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사람은 조직마다 한두 명이 전부고 나머지는 흐르는 물에 맡긴 종이배처럼 흘러가는 대로 일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동료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로 불성실하거나 무능력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만 성장하는 사람은 조직마다 한두 명 있다는 그 사람들이다. 그들만이 성장한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졌다. 타고난 감각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일 잘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뭘 보고 배워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결국 같은 걸 보고 배워도 누구는 그것을 아주 중요한 정보로 처리하고, 누구는 무심히 듣는 라디오처럼 흘려보냈을 것이다.


주니어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회사 분위기가 학구적이고, 인간적으로나 일적으로 훌륭한 사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주니어에게 좋은 사수를 만나는 것만큼 큰 행운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해버릴 수도 있는 시험이지만, 사수는 이 시험이 필요한 이유와 시험 방법과 결과를 통해 무엇을 유추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시험을 해야 하고, 어떤 데이터를 모아야 하고,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했다. 업무 외적으로도 끊임없이 과제를 내주고 공부를 시켰다. 그러니까 시험하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체화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런 사수를 만난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행운을 두 팔을 뻗어 거머쥔 건 성장욕구를 땔감 삼아 일과 공부 모두에 열정적인 나 자신이었다. 나는 싹수가 있었다. 배우려는 의지와 잘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사수도 나를 열정적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 같다. 가끔은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주말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꾸역꾸역 쫓아갔다. 지금 힘들어도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기회이고 행운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사수도 애 하 키우는 맛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엔지니어가 어떤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지를 안다.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체화해야 하고 좋은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배울 수 없다. 싹수라는 게 보여야 가르치고 이끌어 줄 수 있다.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무엇 가르칠 수는 없다. 아무리 밀어 넣어도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쳐 줄 사람은, 배우길 원하는 사람 앞에만 나타나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작고 귀한 한 톨의 싹수를 발견할 수 있는 입사지원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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