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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Sep 02. 2023

제주도로 이직? 일단 자기소개서부터 잘써야..

언젠가부터 웹 프로그래머(웹 개발자)를 개발자라고 일컫고 있다. 세상에 개발자가 웹 개발자뿐이란 말이더냐? 세상엔 경운기 개발자도 있고, 김치 개발자도 있고, 선풍기 개발자도 있는데 말이다. 미디어가 그렇게 만들었다. 미디어가 “코딩하는 멋있는 남자” 이미지를 공급하고 있어서다. 덕분에 개발자라는 보통명사를 "남자 웹 개발자"가 독점하며 온갖 종류의 개발자들의 존재가 지워진다.

그나저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제주에선 전기, 전자, 에너지 분야 개발인력 채용하기가 참 어렵다는 게 내 직장생활 최고의 고충이다. 연구과제 기획이나 웹 프로그램 개발자는 어느 정도 있다. 이직시장이 활발하진 않지만 제주도내에 수요도 있고 공급도 있어서 채용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런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시스템을 개발 하거나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만한 경력자는 제주에 없다. 제주에 HW개발, 제조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관련 경력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의 눈높이를 낮출 수는 없다. 조금 부족하다 싶어도 워낙에 사람이 없으니 도전하는 셈 치고 한번 뽑아 봤다가 낭패를 보거나 후회한 적이 있다. 그런 종류의 도전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깊은 깨우침을 얻었다.

채용공고를 내면 가끔 육지에서 지원서가 온다. 육지 지원서가 오면 경력 외에도 알고 싶은 게 많다. 만약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면 주거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부터 알고 싶다. 그리고 제주 이주에 대한 고민과 결정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다. 강남에서 판교로 이주하는 정도의 무게로 지원서를 낸 건지, 오래 전부터 제주로의 이직을 준비한 것인지 말이다. 제주라는 먼 섬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하고, 근무환경도 많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는데 면접 제의를 할 수는 없다.

경력자는 경력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원서에는 경력사항만 쭉 늘어놓고 자기소개서는 충실히 쓰지 않는다. 거주지를 옮기는 큰 이벤트를 위한 준비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아 제주로의 이주와 이직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냥 호기심에 지원 한번 해봤나 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신입이든 경력이든 자기소개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기업 같은 체계적인 채용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재를 알아보는 나름의 잣대가 있다.

경력은 경력소개서로 알 수 있지만, 업무능력은 자기소개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꽤나 정확한 편이다. 맞춤법이 정확하고 문장력도 유려하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오버다.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만 설명되면 된다.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일을 어떻게 했고 그 일로 뭘 배웠고 앞으로 뭘 잘할 수 있는지 같은 거 말이다.

솔직히 이공계 출신에게 유려한 글쓰기 실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맞춤법?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단어 몇 개 틀리는 게 뭔 대수겠는가? 우린 개발을 하는 사람이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종류의 교양을 평가할 깜냥도 아니다. 단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자기소개서를 원한다. 그걸 설명하는 이야기가 바로 면접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다. 구직에 필수인 자기 어필도 적극적으로 못 하는 사람이 일은  제대로 하겠냐는 생각이다.경력도 자기소개서를 잘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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